[홍영지 문화칼럼] 좋은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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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 홍영지 작성일21-07-05 18:05본문
↑↑ 수필가 홍영지유튜브에 어릴 적에 살던 동네의 옛 정경이 동영상으로 떴다. 불과 몇 년 전까지도 남아 있던 부산의 취약지대 범일동 매축지. 그것을 보는 순간 만감이 교차하며 지난 추억들이 뇌리를 스쳐갔다.
마치 라브린토스의 미로처럼 얽혀 있던 좁은 골목길과 질퍽하게 고인 바닥의 구정물에서 풍기던 악취들. 여름에 큰비라도 내리면 금방 물은 무릎 위까지 차올랐고 집집이 변소에서 넘쳐난 오물이 때를 만난 듯 둥둥 떠 다녔다. 철없는 아이들은 그것도 물이라고 뛰어다니며 장난질 쳤다.
거기서 소년기를 보냈다. 방 한 칸에 5형제가 비비적거리며 어머니와 함께 살았다. 밤에는 이불을 서로 끌어당기며 새우처럼 웅크리고 잠을 잤다. 여름엔 모기와 빈대는 얼마나 집요하게 피를 빨며 괴롭히든지.
아픈 기억들이 한 둘이 아니지만 그 중에서도 식수 구하는 일이 큰 고역이었다. 동네에 딱 하나 뿐인 공동수도를 관리하던 여인의 갑질이 여간 아니었다. 구불구불 수십 미터씩 줄지어 놓인 물통을 발로 차며 고함을 질러대던 기갈 센 그 여자. 그것도 권력이라고 그리 위세부리고 싶었던 모양이다.
피난민들의 애환과 하층민들의 고된 삶이 버물려 있던 그 동네에 그래도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들렸고 옹기종기 밥상에 둘러앉은 정겨운 가족들의 모습도 볼 수 있었다.
그 동네가 개발되며 게딱지처럼 다닥다닥 붙어있던 판자집들이 모두 헐렸다. 옛날에 살았던 우리 집도 함께 사라져버렸다. 지금 아파트 건립공사가 진행 중이다. 몇 년 지나면 새 아스팔트가 깔린 반듯한 길이 나고 30층이 넘는 고층아파트가 들어설 것이다. 상전벽해(桑田碧海)란 이를 두고 말함일 거다. 수도꼭지만 누르면 물은 좔좔 쏟아지고 비데까지 설치된 좌식변기에서 편안히 앉아 볼일도 보게 될 게다. 좋은 집이 새로 한창 건설 중이다.
20대에 들어서며 집을 떠나 타향살이를 했다. 시골로 발령을 받았다. 전기도 없는 벽촌이었지만 혼자 누릴 수 있는 나만의 공간을 갖게 되었다. 호젓한 새 삶이었다. 맘껏 발을 뻗고 잠을 잤다. 편하고 좋았다.
그러나 혼자 덩그라니 밥상을 대할 때면 불현 듯 머리를 맞대고 둘러 앉아 먹던 밥상이 그리웠다. 어둠이 잦아들고 웃음소리와 함께 창호에 비치는 주인집 가족들 그림자를 보면 한 방에서 형제들이 오글거리던 집이 그리웠다. 비오는 날이면 초가지붕에서 떨어지는 낙수소리를 헤며 비가 새던 그 집이 그리웠다. 마을의 골목길을 걷게 될 때면 옛 골목길들이 떠오르기도 했다. 가끔 감상에 젖으면 조그만 트랜지스터 턴테이블로 조안 서들랜드의 애조 띤 소리로 'Home Sweet Home'을 듣곤 하였다.
즐거움과 호화로운 집을 찾아 어디든 돌아다녀 봐도/ 아무리 초라해도 내 집 같은 곳은 없어라/ 하늘의 보살핌이 우리를 거룩하게 해주니/ 세상 다 둘러봐도 그 편함 어디에도 없어라.
집 떠난 이에겐 그 어떤 호화로움도 덧없나니/ 오! 초라한 내 집 내게 다시 돌려다오/ 내 부름 따라 즐겁게 노래하는 새들 모여드니/ 돌려다오 더 할 수 없이 깨끗한 마음의 평안을.
홈, 홈, 홈 다정한 집. 내 집 같은 곳은 어디에도 없어라.
산업화가 되면서 우리나라는 이제 핵가족화 되었다. 겨우 둘 아니면 셋, 더러는 혼자 있는 집들로 변해 간다. 많은 가족이 붐비며 사는 모습은 어디서든 찾아보기 힘들다. 가족 간의 진득한 정은 엷어지고 가끔씩 언론에서는 가정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려온다.
집은 House이며 Home이다. 거주공간으로서의 집은 생활의 편리를 제공해 주지만 가정으로서의 집은 최후까지 의지할 마음의 안식처다. 가정이 무너지면 아무리 좋은 집도 지옥으로 변한다. 깊은 정과 사랑 그리고 위로와 따뜻함이 있는 집. 그래서 사람들은 집을 떠나면 집(House)이 아니라 늘 가족들이 있는 집(Home)이 그리워지는가 보다.
수필가 홍영지 kua348@naver.com
마치 라브린토스의 미로처럼 얽혀 있던 좁은 골목길과 질퍽하게 고인 바닥의 구정물에서 풍기던 악취들. 여름에 큰비라도 내리면 금방 물은 무릎 위까지 차올랐고 집집이 변소에서 넘쳐난 오물이 때를 만난 듯 둥둥 떠 다녔다. 철없는 아이들은 그것도 물이라고 뛰어다니며 장난질 쳤다.
거기서 소년기를 보냈다. 방 한 칸에 5형제가 비비적거리며 어머니와 함께 살았다. 밤에는 이불을 서로 끌어당기며 새우처럼 웅크리고 잠을 잤다. 여름엔 모기와 빈대는 얼마나 집요하게 피를 빨며 괴롭히든지.
아픈 기억들이 한 둘이 아니지만 그 중에서도 식수 구하는 일이 큰 고역이었다. 동네에 딱 하나 뿐인 공동수도를 관리하던 여인의 갑질이 여간 아니었다. 구불구불 수십 미터씩 줄지어 놓인 물통을 발로 차며 고함을 질러대던 기갈 센 그 여자. 그것도 권력이라고 그리 위세부리고 싶었던 모양이다.
피난민들의 애환과 하층민들의 고된 삶이 버물려 있던 그 동네에 그래도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들렸고 옹기종기 밥상에 둘러앉은 정겨운 가족들의 모습도 볼 수 있었다.
그 동네가 개발되며 게딱지처럼 다닥다닥 붙어있던 판자집들이 모두 헐렸다. 옛날에 살았던 우리 집도 함께 사라져버렸다. 지금 아파트 건립공사가 진행 중이다. 몇 년 지나면 새 아스팔트가 깔린 반듯한 길이 나고 30층이 넘는 고층아파트가 들어설 것이다. 상전벽해(桑田碧海)란 이를 두고 말함일 거다. 수도꼭지만 누르면 물은 좔좔 쏟아지고 비데까지 설치된 좌식변기에서 편안히 앉아 볼일도 보게 될 게다. 좋은 집이 새로 한창 건설 중이다.
20대에 들어서며 집을 떠나 타향살이를 했다. 시골로 발령을 받았다. 전기도 없는 벽촌이었지만 혼자 누릴 수 있는 나만의 공간을 갖게 되었다. 호젓한 새 삶이었다. 맘껏 발을 뻗고 잠을 잤다. 편하고 좋았다.
그러나 혼자 덩그라니 밥상을 대할 때면 불현 듯 머리를 맞대고 둘러 앉아 먹던 밥상이 그리웠다. 어둠이 잦아들고 웃음소리와 함께 창호에 비치는 주인집 가족들 그림자를 보면 한 방에서 형제들이 오글거리던 집이 그리웠다. 비오는 날이면 초가지붕에서 떨어지는 낙수소리를 헤며 비가 새던 그 집이 그리웠다. 마을의 골목길을 걷게 될 때면 옛 골목길들이 떠오르기도 했다. 가끔 감상에 젖으면 조그만 트랜지스터 턴테이블로 조안 서들랜드의 애조 띤 소리로 'Home Sweet Home'을 듣곤 하였다.
즐거움과 호화로운 집을 찾아 어디든 돌아다녀 봐도/ 아무리 초라해도 내 집 같은 곳은 없어라/ 하늘의 보살핌이 우리를 거룩하게 해주니/ 세상 다 둘러봐도 그 편함 어디에도 없어라.
집 떠난 이에겐 그 어떤 호화로움도 덧없나니/ 오! 초라한 내 집 내게 다시 돌려다오/ 내 부름 따라 즐겁게 노래하는 새들 모여드니/ 돌려다오 더 할 수 없이 깨끗한 마음의 평안을.
홈, 홈, 홈 다정한 집. 내 집 같은 곳은 어디에도 없어라.
산업화가 되면서 우리나라는 이제 핵가족화 되었다. 겨우 둘 아니면 셋, 더러는 혼자 있는 집들로 변해 간다. 많은 가족이 붐비며 사는 모습은 어디서든 찾아보기 힘들다. 가족 간의 진득한 정은 엷어지고 가끔씩 언론에서는 가정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려온다.
집은 House이며 Home이다. 거주공간으로서의 집은 생활의 편리를 제공해 주지만 가정으로서의 집은 최후까지 의지할 마음의 안식처다. 가정이 무너지면 아무리 좋은 집도 지옥으로 변한다. 깊은 정과 사랑 그리고 위로와 따뜻함이 있는 집. 그래서 사람들은 집을 떠나면 집(House)이 아니라 늘 가족들이 있는 집(Home)이 그리워지는가 보다.
수필가 홍영지 kua34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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