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보경 미래생각] 정치·문화·일상, 열린 공간으로서의 광장(廣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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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미래연구원 부연구위원 민… 작성일19-10-30 19:27본문
↑↑ 국회미래연구원 부연구위원 민보경최근 다시 광장의 열기가 뜨거워졌다. 우리는 광화문 앞과 서초동 거리가 시민의 여론이 집결되는 광장으로써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도시에서의 광장은 어떤 의미일까. 이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꽤 오랜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광장의 기원으로 흔히 아고라(agora)가 언급되는데 '모이다'라는 의미를 가진 아고라는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의 핵심 공간이었다. 그리스인들은 아고라에서 집회를 열었고 각종 재판, 연극, 운동경기를 하였으며 주변에는 시장이 형성되기도 하였다.
근대 유럽의 광장 역시 도시의 기능과 긴밀히 연결되며 중추 신경계 역할을 해왔다. 상인들은 광장을 중심으로 집결하였고 다양한 물건들을 교류했다. 또한 광장은 주민들의 축제와 사교의 장으로 문화적 역할을 하였으며 일상생활의 중심지였다. 따라서 도시에서 주요한 기능을 하는 시청, 교회, 성당, 상가 등의 건물은 광장 주변으로 배치되었다. 유사시 군대가 정렬하고 행진하는 곳도, 그리고 외세나 독재에 저항하기 위해 시민들이 모이는 공간도 광장이었다.
이렇게 광장을 중심으로 도시가 발전한 까닭에 오늘날까지도 유럽의 광장은 유서 깊은 건물이나 역사의 흔적이 남아있다. 바티칸의 '성베드로 광장'은 전 세계 카톨릭의 중심지이고 이탈리아 피사의 '기적의 광장'은 갈릴레이가 중력의 법칙을 발견한 장소이기도 하다. 수많은 광장들은 다양한 문화와 역사를 가지고 있다.
서구에서의 광장이 그리스 이래 시민의 정치·경제·문화·생활의 열린 공간으로 이용되었던 반면, 우리나라에서 광장의 역사는 일천하다. 현재 광화문 광장의 위치는 조선시대 '이·호·예·병·형·공' 6조가 있던 거리로 임금의 명령이 나가고 백성들의 소리가 들어오는 통로로써 여론을 모으는 그 시절 광장의 역할을 대신했을 수도 있다.
우리 역사에서 광장의 등장은 1898년 종로의 만민공동회에서 찾는다. 이후 3.1운동(탑골공원), 4.19혁명(서울시청 앞), 6월 항쟁(명동성당) 등 시민들은 광장에 모여 정치적 목소리를 한데 모았다. 그리고 2002년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뜨거웠던 월드컵 응원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광장이 역사에서, 정치에서, 큰 스포츠 축제에서 굵직한 사건들과 함께 우리의 기억에 남아 있지만 정작 우리에게는 사실 이렇다 할 광장이 별로 없다. 더욱이 광장은 우리의 일상생활과는 좀 동떨어진 공간이기도 하다. 여전히 일반 시민에게 광장은 대규모 정치집회나 국가적인 스포츠 경기를 응원하는 공간 정도로 인식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광장은 대규모 집회나 행사를 위한 장소를 제공하는 것 이외에 시민들의 일상적인 삶을 담아내는 생활공간으로써의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광장의 기능을 하는 오픈스페이스가 우리의 주거공간으로 보다 많이 편입되어야 한다.
광장이라는 단어가 가지는 의미와는 역설적이게도 면적이 넓을 필요는 없다. 유럽은 도시마다 동네마다 크고 작은 광장들이 어우러져 있다. 예를 들어 로마에는 성 베드로 성당 앞의 크고 유명한 광장부터 마을 곳곳에 분수가 있는 작은 광장까지 다양하다. 이러한 동네마다의 아담한 광장들은 시민의 삶을 담아내는 중요한 커뮤니티 센터의 역할을 한다. 동네의 광장에서 일상에 담겨있는 민주주의와 시민 주권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도시 디자인에 있어 광장은 열린 공간으로서 커뮤니티 구조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미국의 도시계획가 케빈 린치(Kevin Lynch)는 도시 이미지를 결정하는 주요 요소로 길과 길이 만나는 교차점인 노드(node)를 강조하는데 광장이 그 역할을 할 수 있다. 광장은 공원과 더불어 도시의 오픈스페이스로 활용되고 있으나 광장은 길로써 연결이 되어 사람과 도시의 주요기능을 모으는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공원과 구별된다.
아파트와 같은 폐쇄적 주거공간에 갇혀 사는 우리에게 광장은 답답한 숨을 틔워주는 공간으로 거듭날 필요가 있다. 여러 갈래의 길들이 모여드는 확 트인 넓은 공간 주변에 상업공간과 문화공간을 배치하고 사람들이 모여드는 아름다운 곳으로 만들어야 한다. 시민들이 지역 내에서 자유롭게 소통하고 융화할 수 있도록 광장을 디자인하는 것은 도시재생의 방안으로도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광장은 도시 중심에 자리 잡은 공간일 뿐만 아니라 그 도시의 문화와 역사를 나타내는 장소성(sense of place)을 구성하는 요소이기도 하다.
광장은 단지 넓고 확 트인 물리적 공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광장은 시민을 위한 공간이며 그들이 그 공간에 생명력을 불어넣을 것이다. 우리의 생활주변에 작은 광장들은 공간적 여유로움을 만들어 낼 뿐만 아니라 지역공동체의 소중한 자산이 된다. 광장은 다채로운 사람들이 모여 담론을 만들어내는 공간이면서도 휴식을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될 수 있어야 한다. 영화 '로마의 휴일' 속 오드리 헵번처럼 일상에서의 자유롭고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광장, 매력적이지 않은가.
국회미래연구원 부연구위원 민… kua348@naver.com
도시에서의 광장은 어떤 의미일까. 이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꽤 오랜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광장의 기원으로 흔히 아고라(agora)가 언급되는데 '모이다'라는 의미를 가진 아고라는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의 핵심 공간이었다. 그리스인들은 아고라에서 집회를 열었고 각종 재판, 연극, 운동경기를 하였으며 주변에는 시장이 형성되기도 하였다.
근대 유럽의 광장 역시 도시의 기능과 긴밀히 연결되며 중추 신경계 역할을 해왔다. 상인들은 광장을 중심으로 집결하였고 다양한 물건들을 교류했다. 또한 광장은 주민들의 축제와 사교의 장으로 문화적 역할을 하였으며 일상생활의 중심지였다. 따라서 도시에서 주요한 기능을 하는 시청, 교회, 성당, 상가 등의 건물은 광장 주변으로 배치되었다. 유사시 군대가 정렬하고 행진하는 곳도, 그리고 외세나 독재에 저항하기 위해 시민들이 모이는 공간도 광장이었다.
이렇게 광장을 중심으로 도시가 발전한 까닭에 오늘날까지도 유럽의 광장은 유서 깊은 건물이나 역사의 흔적이 남아있다. 바티칸의 '성베드로 광장'은 전 세계 카톨릭의 중심지이고 이탈리아 피사의 '기적의 광장'은 갈릴레이가 중력의 법칙을 발견한 장소이기도 하다. 수많은 광장들은 다양한 문화와 역사를 가지고 있다.
서구에서의 광장이 그리스 이래 시민의 정치·경제·문화·생활의 열린 공간으로 이용되었던 반면, 우리나라에서 광장의 역사는 일천하다. 현재 광화문 광장의 위치는 조선시대 '이·호·예·병·형·공' 6조가 있던 거리로 임금의 명령이 나가고 백성들의 소리가 들어오는 통로로써 여론을 모으는 그 시절 광장의 역할을 대신했을 수도 있다.
우리 역사에서 광장의 등장은 1898년 종로의 만민공동회에서 찾는다. 이후 3.1운동(탑골공원), 4.19혁명(서울시청 앞), 6월 항쟁(명동성당) 등 시민들은 광장에 모여 정치적 목소리를 한데 모았다. 그리고 2002년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뜨거웠던 월드컵 응원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광장이 역사에서, 정치에서, 큰 스포츠 축제에서 굵직한 사건들과 함께 우리의 기억에 남아 있지만 정작 우리에게는 사실 이렇다 할 광장이 별로 없다. 더욱이 광장은 우리의 일상생활과는 좀 동떨어진 공간이기도 하다. 여전히 일반 시민에게 광장은 대규모 정치집회나 국가적인 스포츠 경기를 응원하는 공간 정도로 인식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광장은 대규모 집회나 행사를 위한 장소를 제공하는 것 이외에 시민들의 일상적인 삶을 담아내는 생활공간으로써의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광장의 기능을 하는 오픈스페이스가 우리의 주거공간으로 보다 많이 편입되어야 한다.
광장이라는 단어가 가지는 의미와는 역설적이게도 면적이 넓을 필요는 없다. 유럽은 도시마다 동네마다 크고 작은 광장들이 어우러져 있다. 예를 들어 로마에는 성 베드로 성당 앞의 크고 유명한 광장부터 마을 곳곳에 분수가 있는 작은 광장까지 다양하다. 이러한 동네마다의 아담한 광장들은 시민의 삶을 담아내는 중요한 커뮤니티 센터의 역할을 한다. 동네의 광장에서 일상에 담겨있는 민주주의와 시민 주권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도시 디자인에 있어 광장은 열린 공간으로서 커뮤니티 구조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미국의 도시계획가 케빈 린치(Kevin Lynch)는 도시 이미지를 결정하는 주요 요소로 길과 길이 만나는 교차점인 노드(node)를 강조하는데 광장이 그 역할을 할 수 있다. 광장은 공원과 더불어 도시의 오픈스페이스로 활용되고 있으나 광장은 길로써 연결이 되어 사람과 도시의 주요기능을 모으는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공원과 구별된다.
아파트와 같은 폐쇄적 주거공간에 갇혀 사는 우리에게 광장은 답답한 숨을 틔워주는 공간으로 거듭날 필요가 있다. 여러 갈래의 길들이 모여드는 확 트인 넓은 공간 주변에 상업공간과 문화공간을 배치하고 사람들이 모여드는 아름다운 곳으로 만들어야 한다. 시민들이 지역 내에서 자유롭게 소통하고 융화할 수 있도록 광장을 디자인하는 것은 도시재생의 방안으로도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광장은 도시 중심에 자리 잡은 공간일 뿐만 아니라 그 도시의 문화와 역사를 나타내는 장소성(sense of place)을 구성하는 요소이기도 하다.
광장은 단지 넓고 확 트인 물리적 공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광장은 시민을 위한 공간이며 그들이 그 공간에 생명력을 불어넣을 것이다. 우리의 생활주변에 작은 광장들은 공간적 여유로움을 만들어 낼 뿐만 아니라 지역공동체의 소중한 자산이 된다. 광장은 다채로운 사람들이 모여 담론을 만들어내는 공간이면서도 휴식을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될 수 있어야 한다. 영화 '로마의 휴일' 속 오드리 헵번처럼 일상에서의 자유롭고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광장, 매력적이지 않은가.
국회미래연구원 부연구위원 민… kua34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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