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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진 단편연재소설] 나비의 새벽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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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서유진 작성일19-10-17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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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가 서유진무화과 나무에는 푸른 열매가 익었고, 포도나무는 꽃이 피어 향기를 토하는구나.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아가 2장 16절 
 

  핸드폰의 알람이 유라의 말을 삼켜버렸다. 유라는 그가 그때 도와준 남자라는 사실을 깨달았지만, 그는 알지 못했다. 알람을 끈 남자가 나갈 채비를 하고 창가로 다가섰다. 밖은 아직 어두웠다.

  "난 새벽을 좋아합니다. 새벽하늘의 어둠 속에는 태양이 숨어 있거든요."

  "왜 이렇게 일찍 가세요?"

  "어디 갈 곳이 있습니다."

  남자가 유라에게 돈을 내밀었다. 유라는 그의 박봉이 떠올라 덤으로 주는 돈을 도로 내밀었다. 그는 유라의 손을 밀치며 명함 한 장을 건네주었다.

  "아니라면서요."

  유라의 음성이 떨려나왔다.

  "친구합시다. 커피 친구요."
 
  남자가 웨딩드레스를 넣으려고 가방을 활짝 열었을 때 연미복이 눈에 띄었다.

  '그는 한 번도 그 연미복을 입지 못했을 거야. 드레스를 입어본 진이도 자신처럼 아니에요, 아니에요, 하는 그의 절망적인 탄식을 들었을 거야.'

  그때서야 유라는 진이를 위해 그를 징치하겠다는 핑계가 정말 핑계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유라는 자괴감을 느끼며 가방을 닫는 남자의 손을 가만히 보고 서 있었다. 현관으로 나가는 남자의 뒷모습을 보던 유라는 별안간 가방을 챙겨 남자를 쫓아 내달렸다.
 
차에 시동을 걸자마자 은색 지프가 입구를 빠져나갔다. 빨간 경차가 뒤를 쫓았다. 고속도로를 벗어난 차는 국도변의 우거진 송림을 에워싼 주차장에 멈춰 섰다. 유라도 멀찍이 차를 세웠다. 소나무 숲길을 따라 걸어 올라가면 혜성산이었다. 동이 트기 시작했고 새벽안개가 자욱한 산을 오르는 남자의 실루엣이 비현실적으로 보였다.

  남자는 샛길로 빠졌다. 계곡 옆에 이르자 작은 웅덩이가 보였다. 넘쳐흐르는 물이 계곡 쪽으로 흘러내려 가고 있었다. 남자가 옷을 벗었다. 벌거숭이 몸이 희미한 빛 사이로 어른거렸다. 유라는 더 가까이 다가갔다. 거웃 사이로 남자의 그것이 머리를 들었다. 남자는 한 발, 두 발, 물속으로 걸어갔다. 두 팔을 들어 올리고 아! 부르짖고는 몇 번 자맥질하더니 남자의 몸피만 한 바위를 끌어안았다. 클림트의 키스하는 남자처럼 팔을 두르고 머리를 숙였다. 카페의 키스 조각상을 쓰다듬는 유라와 다름없었다.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유라의 단단한 심장 판막이 조금씩 뜯겨나갔다. 까맣게 잊고 있었던 일이었다. 몸에 칭칭 감겨있던 얼음 사슬이 끊어지며 가슴 밑바닥을 텅텅 울렸다. 찍찍 쥐 소리를 내던 나비 한 마리가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바위를 끌어안고 있는 남자가 조각상의 남자였다가 고양이였다가 하얀 백조였다가… 나비, 나비로 보였다.

  유라는 웅덩이 앞의 물푸레나무로 다가갔다. 나뭇가지에 걸어둔 감색 재킷에 손을 넣었다. 차 키를 움켜쥐고 구를 듯 내리막을 달려 내려갔다. 주차장에서 은색 지프를 찾아내어 트렁크를 열었다. 가방에서 연미복과 드레스를 꺼내 자신의 차에 옮겨놓고 다시 산을 향해 숨을 헐떡이며 올라갔다.

  쏴,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남자는 장대 같은 빗줄기를 알몸으로 받으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유라의 옷도 푹 젖어 몸에 달라붙었다. 남자가 물에서 걸어 나왔다. 그의 눈이 크게 열렸다. 유, 유라 씨! 남자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서 있었다.
 
그 시간, 다른 나비 한 마리가 다른 세계로 날아간 것을 유라는 알지 못했다. 유라의 핸드폰이 다급하게 울렸다.  <끝>
소설가 서유진   kua34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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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출처 : 경북신문 (www.kbs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