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유진 단편연재소설] 나비의 새벽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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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서유진 작성일19-10-13 17:39본문
↑↑ 소설가 서유진사랑할 수 있다는 것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체호프
사마귀 사내보다 이 남자는 젊디젊고 얼뜨기 짝이 없다. 생수를 홀짝홀짝 들이마시는 남자를 유라는 물끄러미 바라봤다. 남자가 빈 페트병을 쓰레기통 안에 얌전히 갖다 넣고 말했다.
"저는 어제 그 선배처럼 살고 싶지는 않습니다. 내 생각이 틀린 걸까요."
유라는 머리를 흔들었다.
"유라 씨는 결혼하고 싶지 않으세요?"
유라는 이미 결혼에 대한 꿈을 버렸다고 대답했다. 남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풀기 시작했다.
"나라는 인생, 정말 운이 없어요. 결혼식 일주일 전이었습니다. 결혼반지를 찾고, 신혼여행 때 입을 커플 티셔츠를 산 후 저녁을 먹고 헤어졌는데 이틀 후 신부가 짧은 문자 메시지를 남기고 사라졌습니다. 초라한 결혼 생활에 자신이 없다는 이유였지요."
유라는 고개를 끄떡였다. 그래도 아직 달콤한 결혼을 꿈꾸고 있습니다, 하고 남자가 힘주어 말했다. 유라가 달콤하다고요? 반문하자 하긴 시큼할 수도 있겠지요, 하고 말을 바꿨다.
남자는 문제의 그 가방을 가져왔다. 잠시 생각하는 듯했다. 자르르 지퍼 여는 소리에 유라의 목이 길어졌다. 남자가 꺼낸 것은 눈부시게 하얀 웨딩드레스였다. 유라는 탄성을 지르며 드레스를 빼앗아 들고 거울 앞으로 갔다. 남자가 입어보라고 권했다. 유라는 드레스로 갈아입고 빙그르르 돌았다. 갑자기 남자가 머리를 가로저었다. 얼굴을 찌푸리며 두 손으로 이마를 가리는데 아주 실망한 모습이었다.
"왜 그러세요?"
"아, 아니군요, 또 아닙니다."
"뭐가 아니에요?"
"당신에게 기대했는데…."
그는 두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무엇을 기대했는데요?"
"이미지요, 그녀의 이미지요."
남자는 과거에 결박되어 있었다. 유라는 불현듯 찰스 디킨스의 소설 '위대한 유산'의 미스 해비셤이 떠올랐다. 결혼식 날 남편에게 배신당한 해비셤의 시간은 과거에 멈춰버렸다. 늙을 때까지 웨딩드레스를 입고 지내며 썩어가는 결혼케이크가 있는 방을 매일같이 배회했다. 남자도 웨딩드레스를 가지고 다니며 과거의 고통을 반복하고 있었다. 유라는 돈과 얼음 같은 의지로 무장한 자신의 손이 그의 사슬을 끊어줄 수 있을까, 생각했다.
'카라마조프 형제들'의 인물 그루센까가 말했다. 심보가 고약해서 지옥에 떨어진 노파를 구하려고 수호천사가 나섰다. 그는 노파가 한 뿌리의 파를 거지에게 준 일이 있다고 하나님께 고했다. 하나님은 그 파를 지옥에 내려주어 파를 붙잡고 올라오게 하라고 일러주었다. 유라는 자신도 파 한 뿌리를 남자에게 주고 싶었다.
"이런 생활이 힘들지요?"
남자도 유라에게 한 뿌리의 파를 주려고 했다. 그가 사연을 털어놓았듯이 유라는 아무에게도 고백하지 않았던 직업의 고충을 말하고 싶었다.
"간혹 수캐 같은 남자가 있어요."
"그래요, 남자를 짐승이라 하잖습니까. 반년 전에, 아마 이 모텔이었지요. 도망치려던 여자를 도운 일이 있습니다. 그 여자도 유라 씨처럼 발차기를 잘 했어요. 그때 놈들한테 맞아 의치를 세 개나 해 넣었습니다. 흐흐. 그 바람에 손해 배상 톡톡하게 받았지요."
"혹시, 그때!" <계속>
소설가 서유진 kua348@naver.com
사마귀 사내보다 이 남자는 젊디젊고 얼뜨기 짝이 없다. 생수를 홀짝홀짝 들이마시는 남자를 유라는 물끄러미 바라봤다. 남자가 빈 페트병을 쓰레기통 안에 얌전히 갖다 넣고 말했다.
"저는 어제 그 선배처럼 살고 싶지는 않습니다. 내 생각이 틀린 걸까요."
유라는 머리를 흔들었다.
"유라 씨는 결혼하고 싶지 않으세요?"
유라는 이미 결혼에 대한 꿈을 버렸다고 대답했다. 남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풀기 시작했다.
"나라는 인생, 정말 운이 없어요. 결혼식 일주일 전이었습니다. 결혼반지를 찾고, 신혼여행 때 입을 커플 티셔츠를 산 후 저녁을 먹고 헤어졌는데 이틀 후 신부가 짧은 문자 메시지를 남기고 사라졌습니다. 초라한 결혼 생활에 자신이 없다는 이유였지요."
유라는 고개를 끄떡였다. 그래도 아직 달콤한 결혼을 꿈꾸고 있습니다, 하고 남자가 힘주어 말했다. 유라가 달콤하다고요? 반문하자 하긴 시큼할 수도 있겠지요, 하고 말을 바꿨다.
남자는 문제의 그 가방을 가져왔다. 잠시 생각하는 듯했다. 자르르 지퍼 여는 소리에 유라의 목이 길어졌다. 남자가 꺼낸 것은 눈부시게 하얀 웨딩드레스였다. 유라는 탄성을 지르며 드레스를 빼앗아 들고 거울 앞으로 갔다. 남자가 입어보라고 권했다. 유라는 드레스로 갈아입고 빙그르르 돌았다. 갑자기 남자가 머리를 가로저었다. 얼굴을 찌푸리며 두 손으로 이마를 가리는데 아주 실망한 모습이었다.
"왜 그러세요?"
"아, 아니군요, 또 아닙니다."
"뭐가 아니에요?"
"당신에게 기대했는데…."
그는 두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무엇을 기대했는데요?"
"이미지요, 그녀의 이미지요."
남자는 과거에 결박되어 있었다. 유라는 불현듯 찰스 디킨스의 소설 '위대한 유산'의 미스 해비셤이 떠올랐다. 결혼식 날 남편에게 배신당한 해비셤의 시간은 과거에 멈춰버렸다. 늙을 때까지 웨딩드레스를 입고 지내며 썩어가는 결혼케이크가 있는 방을 매일같이 배회했다. 남자도 웨딩드레스를 가지고 다니며 과거의 고통을 반복하고 있었다. 유라는 돈과 얼음 같은 의지로 무장한 자신의 손이 그의 사슬을 끊어줄 수 있을까, 생각했다.
'카라마조프 형제들'의 인물 그루센까가 말했다. 심보가 고약해서 지옥에 떨어진 노파를 구하려고 수호천사가 나섰다. 그는 노파가 한 뿌리의 파를 거지에게 준 일이 있다고 하나님께 고했다. 하나님은 그 파를 지옥에 내려주어 파를 붙잡고 올라오게 하라고 일러주었다. 유라는 자신도 파 한 뿌리를 남자에게 주고 싶었다.
"이런 생활이 힘들지요?"
남자도 유라에게 한 뿌리의 파를 주려고 했다. 그가 사연을 털어놓았듯이 유라는 아무에게도 고백하지 않았던 직업의 고충을 말하고 싶었다.
"간혹 수캐 같은 남자가 있어요."
"그래요, 남자를 짐승이라 하잖습니까. 반년 전에, 아마 이 모텔이었지요. 도망치려던 여자를 도운 일이 있습니다. 그 여자도 유라 씨처럼 발차기를 잘 했어요. 그때 놈들한테 맞아 의치를 세 개나 해 넣었습니다. 흐흐. 그 바람에 손해 배상 톡톡하게 받았지요."
"혹시, 그때!" <계속>
소설가 서유진 kua34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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