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호 특별기고] 모정의 세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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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학박사 김영호 작성일19-09-16 19:37본문
↑↑ 교육학박사 김영호한여름 열대야가 여러 날 계속되던 어느 날 5주간의 ROTC 군사훈련 중 처음으로 야간에 참기 어려운 전투훈련을 마친 후 무거운 M1소총을 움켜쥐고 장거리 구보를 하며 부대로 돌아올 때, 온몸에 힘은 빠져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하였다. 그날따라 보름달은 어머니의 모습처럼 밝았었다, "별빛이 밝은 전선의 밤! 이겨 돌아오란 어머니의 목소리…" 군가를 부르면서 모두는 달빛에 떠오르는 어머니의 모습을 바라보며 눈물을 쏟았다. 극한 상황에 처하니 무의식적으로 불러지는 이름은 어머니였다. "어머니! 힘을 주소서! 장교가 되는 길이 이토록 힘이 드는 길인 줄은 몰랐습니다."
필자가 힘든 훈련을 참고 견디면서 몸소 체험했던 그 때 그 시절을 다시금 생각해 보니 그것은 오직 위대한 모정의 힘이었다는 것을 결코 잊을 수 없는 병영의 이야기가 되었다.
신분이 군인인 신라 청년 진정(眞定)은 집이 가난하여 장가들지 못하고 군복무를 하면서도 여가에 품팔이를 하여 곡식을 얻어 홀어미를 극진히 봉양하였다. 곤궁한 형편에 가산이 많을 수 없었다. 재산이라고는 오직 다리가 부러진 솥 한 개가 있었다. 하루는 승려가 찾아와서 절을 짓는데 철물이 필요하니 그 솥을 시주할 수 없느냐고 청하였다. 그래서 진정의 어머니는 기꺼이 시주하고 말았다.
며칠이 지난 후 진정이 집으로 돌아오자 어머니는 솥을 시주한 까닭에 대해 말하고 아들의 뜻이 어떠할까를 염려하였다.
진정은 "절을 짓는데 필요한 쇠붙이를 시주하였으니 얼마나 다행한 일입니까?" 비록 솥이 없다 한들 걱정할 게 무엇입니까?" 기쁜 표정으로 말하면서, 기와로 솥을 삼아 밥을 지어 어머니를 봉양하였다.
진정은 군에서 의상대사가 태백산에 거처하며 설법을 통해 사람들을 교화한다는 말을 듣고, 어머니에게, "효를 다한 후에는 마땅히 이상대사에게 가서 삭발하고 불도를 배우겠습니다"라고 말씀을 드리니, 어머니는 "불법은 만나기 어렵고 인생은 너무 빨리 지나간다. 그런데 효를 다하고 간다면 너무 늦지 않겠느냐? 그것이 어찌 내가 죽기 전에 네가 가서 도(道)를 들었다는 말을 듣는 것만 하겠느냐? 머뭇거리지 말고 속히 가야한다", "어머니의 만년에 제가 옆에 있어야 하는 데 어찌 감히 어머니를 버리고 출가하겠습니까?" 그러나 진정의 어머니는 배움에는 때와 훌륭한 스승을 만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내가 너의 출가에 방해가 된다면 나로 하여금 지옥으로 빠뜨리는 것이니, 비록 살아서 진수성찬으로 봉양한들 어찌 효도가 되겠느냐? 남의 문전에서 의식을 구걸하더라도 타고난 명을 누릴 수가 있다. 그러니 효도를 하고자 하거든 그러한 말을 하지 말라"고 하면서 의상대사로부터 배워야 한다고 강력하게 출가하도록 하였다.
그리고는 집에 남아있는 쌀 일곱 되 가운데 한 되는 밥을 지어 먹게 하고 나머지 여섯 되는 가는 길에 먹을 수 있도록 싸들고 가도록 하여 떠나보냈던 것이다. 진정은 어머니의 뜻을 거역하지 못하고 길을 떠나 주야 걸어 사흘 만에 태백산에 도착하여 의상대사의 제자가 되었다고 한다.
이것은 삼국유사가 보여주는 신라 어머니의 눈물 나는 모정의 스토리이며, 고명한 진정법사가 되게 한 효선(孝善)의 표본적 사적(事蹟)이다. 훌륭한 스님에게 배우고 싶다는 말을 들은 진정의 어머니는 자식의 출세를 위해 어떠한 고난도 감수하겠다는 희생적 모정을 보여준 것이다, 이것은 고금을 통해서 변함이 없다는 것을 또한 말해 주고 있다.
추석 명절에 고향에 계시는 부모님을 뵙고 조선(祖先)의 은혜에 보본의 도리를 다하고자 10시간 넘게 운전을 하며 귀향하는 자녀의 실제적 효심도 높이 평가하여야 할 아름다운 일이다. 차례와 성묘를 마치고 이튼 날 새벽에 다시 돌아가는 자식의 상경 길에 된장, 김치, 멸치, 과일, 잡곡, 꿀, 표고버섯, 홍삼 등 하나라도 더 실어 보내려는 마음은 신라 어머니의 모정에 버금가는 값으로 따질 수 없는 무한가치라는 것을 극한 상황에서만 느낄 것이 아니라 모정의 세월에 항상 잊지 말아야 추석의 교훈으로 새겼으면 한다.
교육학박사 김영호 kua348@naver.com
필자가 힘든 훈련을 참고 견디면서 몸소 체험했던 그 때 그 시절을 다시금 생각해 보니 그것은 오직 위대한 모정의 힘이었다는 것을 결코 잊을 수 없는 병영의 이야기가 되었다.
신분이 군인인 신라 청년 진정(眞定)은 집이 가난하여 장가들지 못하고 군복무를 하면서도 여가에 품팔이를 하여 곡식을 얻어 홀어미를 극진히 봉양하였다. 곤궁한 형편에 가산이 많을 수 없었다. 재산이라고는 오직 다리가 부러진 솥 한 개가 있었다. 하루는 승려가 찾아와서 절을 짓는데 철물이 필요하니 그 솥을 시주할 수 없느냐고 청하였다. 그래서 진정의 어머니는 기꺼이 시주하고 말았다.
며칠이 지난 후 진정이 집으로 돌아오자 어머니는 솥을 시주한 까닭에 대해 말하고 아들의 뜻이 어떠할까를 염려하였다.
진정은 "절을 짓는데 필요한 쇠붙이를 시주하였으니 얼마나 다행한 일입니까?" 비록 솥이 없다 한들 걱정할 게 무엇입니까?" 기쁜 표정으로 말하면서, 기와로 솥을 삼아 밥을 지어 어머니를 봉양하였다.
진정은 군에서 의상대사가 태백산에 거처하며 설법을 통해 사람들을 교화한다는 말을 듣고, 어머니에게, "효를 다한 후에는 마땅히 이상대사에게 가서 삭발하고 불도를 배우겠습니다"라고 말씀을 드리니, 어머니는 "불법은 만나기 어렵고 인생은 너무 빨리 지나간다. 그런데 효를 다하고 간다면 너무 늦지 않겠느냐? 그것이 어찌 내가 죽기 전에 네가 가서 도(道)를 들었다는 말을 듣는 것만 하겠느냐? 머뭇거리지 말고 속히 가야한다", "어머니의 만년에 제가 옆에 있어야 하는 데 어찌 감히 어머니를 버리고 출가하겠습니까?" 그러나 진정의 어머니는 배움에는 때와 훌륭한 스승을 만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내가 너의 출가에 방해가 된다면 나로 하여금 지옥으로 빠뜨리는 것이니, 비록 살아서 진수성찬으로 봉양한들 어찌 효도가 되겠느냐? 남의 문전에서 의식을 구걸하더라도 타고난 명을 누릴 수가 있다. 그러니 효도를 하고자 하거든 그러한 말을 하지 말라"고 하면서 의상대사로부터 배워야 한다고 강력하게 출가하도록 하였다.
그리고는 집에 남아있는 쌀 일곱 되 가운데 한 되는 밥을 지어 먹게 하고 나머지 여섯 되는 가는 길에 먹을 수 있도록 싸들고 가도록 하여 떠나보냈던 것이다. 진정은 어머니의 뜻을 거역하지 못하고 길을 떠나 주야 걸어 사흘 만에 태백산에 도착하여 의상대사의 제자가 되었다고 한다.
이것은 삼국유사가 보여주는 신라 어머니의 눈물 나는 모정의 스토리이며, 고명한 진정법사가 되게 한 효선(孝善)의 표본적 사적(事蹟)이다. 훌륭한 스님에게 배우고 싶다는 말을 들은 진정의 어머니는 자식의 출세를 위해 어떠한 고난도 감수하겠다는 희생적 모정을 보여준 것이다, 이것은 고금을 통해서 변함이 없다는 것을 또한 말해 주고 있다.
추석 명절에 고향에 계시는 부모님을 뵙고 조선(祖先)의 은혜에 보본의 도리를 다하고자 10시간 넘게 운전을 하며 귀향하는 자녀의 실제적 효심도 높이 평가하여야 할 아름다운 일이다. 차례와 성묘를 마치고 이튼 날 새벽에 다시 돌아가는 자식의 상경 길에 된장, 김치, 멸치, 과일, 잡곡, 꿀, 표고버섯, 홍삼 등 하나라도 더 실어 보내려는 마음은 신라 어머니의 모정에 버금가는 값으로 따질 수 없는 무한가치라는 것을 극한 상황에서만 느낄 것이 아니라 모정의 세월에 항상 잊지 말아야 추석의 교훈으로 새겼으면 한다.
교육학박사 김영호 kua34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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