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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문의 페르시안나이트] 거미줄처럼 얽힌 시장 안에 페르시아인들의 삶이 살아 숨 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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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문 작성일19-09-05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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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란 북부 타브리즈의 바자르   
[경북신문=이상문기자] 페르시아를 여행할 때 가장 큰 장점은 여행자들이 좋아할만한 핵심 콘텐츠가 집중돼 몰려 있다는 점이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시장과 그 도시를 대표하는 종교시설을 찾아보는 것이 최근의 여행 트렌드에 부합한다면 그 주장은 틀리지 않다. 더구나 페르시아의 문화 가운데 시장과 모스크가 차지하는 비중이 거의 절대적이므로 페르시아의 어느 도시에 가든 큰 발품을 팔지 않고 그 도시의 가장 비중 있는 공간을 둘러볼 수 있다.

                    ↑↑ 이란 남부 시라즈의 발킬 바자르. 페르시안 카페트가 눈길을 끈다.   
◆ 바자르, 목욕탕, 모스크가 한 곳에 집중된 페르시아의 도시

페르시아의 도시 구조 중 흥미로운 것은 사원과 시장, 목욕탕, 카라반들의 숙소가 반드시 같이 모여 있다는 점이다. 도시를 대표하는 모스크 주변에 바자르가 형성돼 있고 어김없이 목욕탕인 함만이 곁다리로 끼어 있다. 단순하게 생각해도 그 구조의 이치는 금방 짐작이 간다. 종교가 삶인 그들에게 모스크는 삶의 터전 한가운데 자리 잡았고 경배를 올리고 돌아서면 다시 생생한 일상으로 돌아서니 바자르가 모스크 주변에 존재하는 것이 편하다. 게다가 모스크에 들기 전 몸과 마음을 닦아야 하니 목욕탕도 가까이 있으면 금상첨화다. 그리고 먼 지방에서 바자르나 모스크에 이른 길손들이 쉬어가는 숙소도 반드시 있어야 한다.

페르시아에서 바자르는 모스크와 함께 이슬람 사회를 이루는 가장 중요한 구성요소다. 바자르는 단순하게 물건을 사고파는 시장의 개념을 넘어 세상의 모든 정보가 들끓는 커뮤니티로의 역할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페르시아에서 고도로 발달한 바자르는 대개 실크로드상의 주요도시에 있고 동쪽의 중국이나 더 멀리 신라에서부터 대이동을 한 카라반들이 통과하는 관문 역할을 했다.

거기에서는 사막을 거쳐 페르시아에 닿은 카라반들이 낯선 세계의 소식과 문화를 전해줬고 페르시아에서 존재하지 않는 기술도 전파가 됐다. 그러므로 페르시아의 바자르는 이슬람 세계에서 없어서는 안 될 정보창고 역할도 했다. 또 그들이 금은보화나 귀한 약재를 흥정하면서 사막의 모래를 털어내는 목욕탕인 함만이 발달한 것은 고대 로마 제국의 부패한 목욕탕 문화와는 차원이 다르다.

                    ↑↑ 테헤란 센트럴 바자르의 유기전.   
◆ 페르시아 바자르는 중세 이슬람 건축의 모범

페르시아의 바자르 입구에는 반드시 광장이 있다. 유럽의 도시에 광장이 발달한 것도 페르시아 문명의 전파 덕분이다. 이 광장은 사람들의 미팅 포인트 역할을 하고 먼 곳에서 온 물화들을 부려놓거나 분류하는 물류센터 역할도 했다. 대개 광장은 바자르의 시작임을 알리고 광장에 잇댄 작은 골목길이 이어져 도시 속의 또 다른 도시인 바자르가 펼쳐진다.

테헤란의 사브지광장, 이스파한의 이맘광장, 시라즈의 바킬광장이 바로 바자르를 품고 있는 유명한 광장들이다. 광장에서 비롯된 골목길로 접어들면 거미줄같이 얼기설기 바자르가 열린다. 다시 말하지만 페르시아의 바자르는 단순한 시장의 구조를 가지지 않는다. 바자르 자체가 또 하나의 도시로 형성돼 있다. 과거에는 바자르가 그 도시의 중심이었고 바자르를 벗어나면 그 도시의 외곽이었다.

바자르의 형태는 좁은 골목길 양쪽에 상점들이 줄지어 섰고 '러스테'라는 돔 형태의 지붕을 덮었다. 사막기후가 특징인 페르시아의 날씨를 따진다면 돔은 비를 막는 역할과 뜨거운 햇살을 가리는 역할을 동시에 했다. 바자르에 들어서면 우산도 양산도 필요 없다. 바자르의 지붕 역할을 하는 '러스테'는 그 자체로 이슬람 문화권의 서민 건축양식을 대표하고 있다.

이 같은 '러스테'의 흔적은 이미 2000년 전 페르시아의 고대도시 슈슈에서 발견됐다. 처음에는 갈대로 구조를 엮고 그 위에 천을 덮어 '러스테' 형태를 만들었지만 차차 나무를 사용해 천장을 만들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그 후 페르시아 사람들은 벽돌을 구워 돔을 올렸고 지금의 형태를 완성한 것이다.

                    ↑↑ 바자르에서 빠질수 없는 견과상점. 이란인들은 견과를 즐긴다.   
그런데 벽돌로 '러스테'를 만들고 나니 문제가 생겼다. 통풍과 볕이 문제였다. 견고하고 외부의 열기를 차단하는 역할은 했지만 골목 안이 답답하고 어두웠다. 그래서 돔의 중앙에 구멍을 뚫었다. 그 구멍이 '누르기르'다. '누르기르'는 바자르의 조명 역할을 하고 통풍구 역할도 한다. 바자르를 걷다가 '누르기르'로 스며든 밝고 따사로운 햇살이 골목을 감싸 안은 모습을 바라보는 것도 페르시아 산책의 중요한 재미다.

골목길은 미로다. 우리나라 남대문 시장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규모가 큰 바자르에서 길을 잃을 확률은 크다. 그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니라면 바자르의 어느 특정한 상점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하는 것은 무모한 짓이다. 또 이방인이 바자르 안에서 길을 잃는다고 해서 크게 당황할 일도 아니다. 길은 길로 이어져 있고 그 길을 따라 무심코 걷다 보면 수많은 출구 중의 하나로 빠져 나올 수 있다.

                    ↑↑ 바라즈의 문구점. 좌판에 놓인 몰목은 마치 우리나라 70~80년대의 물건들처럼 조악하다.   
그 거대한 바자르에도 일관된 룰이 존재한다. 어느 지역으로 가야 필요한 물품을 구입할 수 있는지 그 지역 사람들은 훤히 꿰뚫고 있다. 그건 어느 나라의 대규모 시장에서나 마찬가지다. 백화점이나 대형 마트를 자주 가는 사람들이 품목별로 나눠 전시된 공간 감각을 자연스럽게 익히듯이 페르시아의 바자르도 구역별로 네트워크가 잘 형성돼 있어 크게 혼란스러울 일은 없다.

또 물품을 구입하러 온 사람과 상인들이 물품을 실어나르는 공간이 구별돼 있어 서로 얽히는 일도 없다. 세상에서 가장 복잡한 바자르 중 하나인 인도 델리의 찬드니촉은 상인과 시민들이 한 곳에 얽혀 아수라장을 만들지만 페르시아의 바자르는 그런 혼란이 빚어지지 않는다. 오랜 역사를 가진 그들만의 바자르 문화가 제대로 정착됐기 때문이다.
이상문   iou51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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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출처 : 경북신문 (www.kbs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