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유진 단편연재소설] 나비의 새벽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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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서유진 작성일19-09-04 19:01본문
↑↑ 소설가 서유진나는 단 한 가지 책임만 아는데, 그것은 사랑하는 것이다. ― A. 까뮈
비가 그칠 줄 몰랐다. 하늘은 절규와 통곡을 쏟아내고, 흐느끼다가, 음울한 침묵에 잠기기를 반복했다. 유라는 곰팡내와는 다른, 무언가가 썩는 냄새를 맡았다. 소파 밑에 썩어가는 쥐의 사체가 숨어있을지 몰랐다. 거기서 구더기라도 나온다면 낭패다. 말하고 보니 여기가 하수구라는 말이 되어버렸다. 우리는 쥐이고 고객들은 고양이인가? 쥐는 먹잇감만 있다면 하수구를 벗어나 햇살 좋은 기와집 마루 같은 곳으로 옮겨가고 싶을 것이다. 이런 생각은 주기적으로 유라의 마음을 쓸쓸하게 했다.
그럴 때면 유라는 응당 이별한 첫사랑 남자를 떠올렸고, 쥐가 햇살 좋은 기와집 마루로 옮겨가듯 프런트 뒤쪽의 부속실로 들어가 차이콥스키의 안단테칸타빌레를 들었다. 그것은 자신의 내면에 귀를 기울이는 유일한 시간이었는데, 음악을 들으며 핸드폰에 메모되어 있는 글을 읽곤 했다. 그것은 인터넷에서 우연히 건진 어느 지방 작가가 쓴 문화칼럼을 베낀 것이었다.
내가 한없이 작아지는 시간이면 마음 깊은 곳에 안단테칸타빌레가 흐른다. 눈을 감는다. 의식이 푸른 강물을 따라 떠내려간다. 날개를 팔랑거리며 강을 따라 내려갔다. 그때 나직하게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백조가 된 그였다. 가슴이 떨려 그 자리에 멈춰서 꼼짝할 수 없었다. 그의 모습은 너무나 눈부셨다. 조금 더 다급하고 다정한 속삭임이 들렸다. 대답할 수도 숨을 쉴 수도 없었던 나는 옆의 파랑으로 도망쳤다. 나는 어떻게 해도 백조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나비와 백조는 일단 크기에서 어울리지 않았다. 가지 마! 돌아와! 바람이 그의 말을 싣고 지나갔다. 나는 그가 건너올 수 없는 악어의 강으로 힘껏 날아갔다. 악어의 등에 올라앉아 나를 향해 물살을 가르며 헤엄쳐오는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두어 번 비상을 시도했지만 내게로 건너올 수 없었다. 사랑은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옹졸하지 않아. 돌아와! 나는 더 힘껏 날아올랐다.
한쪽 날개가 찢어졌다. 수면 위로 떨어져 내리는 중에도 날개를 접는 그의 모습을 시야에서 놓치지 않았다. 한없이 떠내려갔다. 눈을 뜨니 어두운 하수구에 쓰러져 있었다. 그 후 나에게는 긴 꼬리가 생겼다. 나는 그가 올 수 없는 세계로 왔다. 내가 때때로 고양이의 습격을 받아 피를 흘리며 누워 있으면 그가 한 말이 내 상처를 닦아주고, 솜털처럼 부드러운 이불이 되어 나를 잠들게 한다. 그대여, 안녕….
이것이 내가 느낀 안단테칸타빌레이다. 이 선율에 가만히 귀를 기울이면 쥐가 된 나비의 아리아가 들릴 것이다. 간혹 고양이가 된 표범의 세레나데도 들을 수 있을지 모른다.
유라는 오늘처럼 비가 축축이 내리는 날이면 늘 습관처럼 이 글을 읽었고, 지난날의 기억을 떠올렸고, 자신이 스스로 떠나보낸 사랑을 불러들였고, 상처를 닦아주는 그 남자의 환상에 몸을 맡겼다.
경기불황이 최악의 상태였고 유라의 카페는 퇴락해갔다. 간혹 운 나쁜 쥐가 고양이에게 물려 죽으면 카페는 부취를 풍기며 구더기 같은 염문에 시달렸다. 고객 중 한 남자를 짝사랑한 진이가 시들시들 앓고 있었다. <계속>
소설가 서유진 kua348@naver.com
비가 그칠 줄 몰랐다. 하늘은 절규와 통곡을 쏟아내고, 흐느끼다가, 음울한 침묵에 잠기기를 반복했다. 유라는 곰팡내와는 다른, 무언가가 썩는 냄새를 맡았다. 소파 밑에 썩어가는 쥐의 사체가 숨어있을지 몰랐다. 거기서 구더기라도 나온다면 낭패다. 말하고 보니 여기가 하수구라는 말이 되어버렸다. 우리는 쥐이고 고객들은 고양이인가? 쥐는 먹잇감만 있다면 하수구를 벗어나 햇살 좋은 기와집 마루 같은 곳으로 옮겨가고 싶을 것이다. 이런 생각은 주기적으로 유라의 마음을 쓸쓸하게 했다.
그럴 때면 유라는 응당 이별한 첫사랑 남자를 떠올렸고, 쥐가 햇살 좋은 기와집 마루로 옮겨가듯 프런트 뒤쪽의 부속실로 들어가 차이콥스키의 안단테칸타빌레를 들었다. 그것은 자신의 내면에 귀를 기울이는 유일한 시간이었는데, 음악을 들으며 핸드폰에 메모되어 있는 글을 읽곤 했다. 그것은 인터넷에서 우연히 건진 어느 지방 작가가 쓴 문화칼럼을 베낀 것이었다.
내가 한없이 작아지는 시간이면 마음 깊은 곳에 안단테칸타빌레가 흐른다. 눈을 감는다. 의식이 푸른 강물을 따라 떠내려간다. 날개를 팔랑거리며 강을 따라 내려갔다. 그때 나직하게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백조가 된 그였다. 가슴이 떨려 그 자리에 멈춰서 꼼짝할 수 없었다. 그의 모습은 너무나 눈부셨다. 조금 더 다급하고 다정한 속삭임이 들렸다. 대답할 수도 숨을 쉴 수도 없었던 나는 옆의 파랑으로 도망쳤다. 나는 어떻게 해도 백조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나비와 백조는 일단 크기에서 어울리지 않았다. 가지 마! 돌아와! 바람이 그의 말을 싣고 지나갔다. 나는 그가 건너올 수 없는 악어의 강으로 힘껏 날아갔다. 악어의 등에 올라앉아 나를 향해 물살을 가르며 헤엄쳐오는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두어 번 비상을 시도했지만 내게로 건너올 수 없었다. 사랑은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옹졸하지 않아. 돌아와! 나는 더 힘껏 날아올랐다.
한쪽 날개가 찢어졌다. 수면 위로 떨어져 내리는 중에도 날개를 접는 그의 모습을 시야에서 놓치지 않았다. 한없이 떠내려갔다. 눈을 뜨니 어두운 하수구에 쓰러져 있었다. 그 후 나에게는 긴 꼬리가 생겼다. 나는 그가 올 수 없는 세계로 왔다. 내가 때때로 고양이의 습격을 받아 피를 흘리며 누워 있으면 그가 한 말이 내 상처를 닦아주고, 솜털처럼 부드러운 이불이 되어 나를 잠들게 한다. 그대여, 안녕….
이것이 내가 느낀 안단테칸타빌레이다. 이 선율에 가만히 귀를 기울이면 쥐가 된 나비의 아리아가 들릴 것이다. 간혹 고양이가 된 표범의 세레나데도 들을 수 있을지 모른다.
유라는 오늘처럼 비가 축축이 내리는 날이면 늘 습관처럼 이 글을 읽었고, 지난날의 기억을 떠올렸고, 자신이 스스로 떠나보낸 사랑을 불러들였고, 상처를 닦아주는 그 남자의 환상에 몸을 맡겼다.
경기불황이 최악의 상태였고 유라의 카페는 퇴락해갔다. 간혹 운 나쁜 쥐가 고양이에게 물려 죽으면 카페는 부취를 풍기며 구더기 같은 염문에 시달렸다. 고객 중 한 남자를 짝사랑한 진이가 시들시들 앓고 있었다. <계속>
소설가 서유진 kua34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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