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기고] `대한독립만세`에서 `대한민국만세`가 되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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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남부보훈지청 보훈과 박지… 작성일19-07-24 19:36본문
↑↑ 경북남부 보훈지청·보훈과 박지혜[경북신문=경북남부보훈지청 보훈과 박지혜]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라는 말로 헌법 전문은 시작된다. 그렇다. 헌법 전문에서 말하고 있듯이, 대한민국의 독립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식민지 약소국에, 독립에 대한 열망을 고조시킨 1918년 1월 미국 윌슨 대통령의 민족자결주의 선언. 1919년 1월 고종황제의 갑작스러운 죽음. 그리고 이러한 열망을 분출시킨 그 날, 고종의 인산일을 이틀 앞둔, 1919년 3월 1일. 서울 종로구 낙원동 탑골공원. 그 곳에서 시작된 대한민국독립에 대한 첫 외침. 그리고 등장하는 우리의 유관순 열사.
우리가 역사 교과서를 통해 기억하는 3·1운동은 이렇게 몇 줄로 끝이 난다. 하지만, 사실, 3·1운동의 의의는 거기서 끝이 나는 것이 아니라, 거기서부터 시작된다. 3·1운동은 일제로부터의 대한민국 자주독립을 선언하는 독립운동의 분수령이었으며, 대한민국 임시 정부를 수립하는 데 있어 가장 큰 발판이 된 운동이었다.
물론 이 배경에는 자주 독립을 향한 작은 태동이 있었다. 1917년 상하이에서 '대동단결선언'이 있었고, 1918년 만주에서 '대한독립선언(무오독립선언)'이 있었다. 그리고 3·1운동의 도화선이 된 '2·8 독립선언'이 바로 일본의 심장부 도쿄에서 있었다. 이러한 작은 태동은 3·1운동을 기점으로 한반도 전체를 독립에 대한 물결로 가득 채웠다.
두 달이 넘도록 계속된, 독립운동이 일어난 거리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손에 칼을 쥔 일본 경찰에 대항하는, 손에 태극기를 쥔 수많은 조선인이 있었다. 대한독립만세라는 함성을 짓밟는 일제 군화의 발길에도, 또다시 독립을 노래 부르는 꺼지지 않는 희망의 목소리가 있었다. 고통의 대한민국을 지키려는 유관순을 비롯한 수많은 평범한 영웅들이 있었다. 이러한 평범한 영웅들은 독립운동의 끝에는 결국, 태극기 대신 총칼을 들며 일본에 대항하는 독립투사가 되었고, 조국의 독립을 위해 본인의 하나뿐인 목숨을 바쳐 싸우다 전사했다. 그리고 끝내 이 땅 대한민국에 독립이 찾아왔다.
3·1운동 100주년을 맞이한 올 한해.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대한독립만세'가 아닌 '대한민국만세'를 외칠 수 있는 현재. 그 현재에는 100년 전의 시작이 있었다는 것을. 그리고 그 시작에는 유관순이 있었고, 또 수많은 유관순이 있었다는 것을. "나라에 바칠 목숨이 오직 하나밖에 없는 것만이 이 소녀의 유일한 슬픔입니다" 라는 말을 남긴 유관순과, 수많은 영웅들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늘 감사한 마음을 잊지 않고 살아야 한다.
지금의 대한민국을 있게 한, 그리하여 현재의 우리가 있게 한, 100년 전의 대한민국을 지킨 수많은 그분들을 그리며….
경북남부보훈지청 보훈과 박지… kua348@naver.com
식민지 약소국에, 독립에 대한 열망을 고조시킨 1918년 1월 미국 윌슨 대통령의 민족자결주의 선언. 1919년 1월 고종황제의 갑작스러운 죽음. 그리고 이러한 열망을 분출시킨 그 날, 고종의 인산일을 이틀 앞둔, 1919년 3월 1일. 서울 종로구 낙원동 탑골공원. 그 곳에서 시작된 대한민국독립에 대한 첫 외침. 그리고 등장하는 우리의 유관순 열사.
우리가 역사 교과서를 통해 기억하는 3·1운동은 이렇게 몇 줄로 끝이 난다. 하지만, 사실, 3·1운동의 의의는 거기서 끝이 나는 것이 아니라, 거기서부터 시작된다. 3·1운동은 일제로부터의 대한민국 자주독립을 선언하는 독립운동의 분수령이었으며, 대한민국 임시 정부를 수립하는 데 있어 가장 큰 발판이 된 운동이었다.
물론 이 배경에는 자주 독립을 향한 작은 태동이 있었다. 1917년 상하이에서 '대동단결선언'이 있었고, 1918년 만주에서 '대한독립선언(무오독립선언)'이 있었다. 그리고 3·1운동의 도화선이 된 '2·8 독립선언'이 바로 일본의 심장부 도쿄에서 있었다. 이러한 작은 태동은 3·1운동을 기점으로 한반도 전체를 독립에 대한 물결로 가득 채웠다.
두 달이 넘도록 계속된, 독립운동이 일어난 거리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손에 칼을 쥔 일본 경찰에 대항하는, 손에 태극기를 쥔 수많은 조선인이 있었다. 대한독립만세라는 함성을 짓밟는 일제 군화의 발길에도, 또다시 독립을 노래 부르는 꺼지지 않는 희망의 목소리가 있었다. 고통의 대한민국을 지키려는 유관순을 비롯한 수많은 평범한 영웅들이 있었다. 이러한 평범한 영웅들은 독립운동의 끝에는 결국, 태극기 대신 총칼을 들며 일본에 대항하는 독립투사가 되었고, 조국의 독립을 위해 본인의 하나뿐인 목숨을 바쳐 싸우다 전사했다. 그리고 끝내 이 땅 대한민국에 독립이 찾아왔다.
3·1운동 100주년을 맞이한 올 한해.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대한독립만세'가 아닌 '대한민국만세'를 외칠 수 있는 현재. 그 현재에는 100년 전의 시작이 있었다는 것을. 그리고 그 시작에는 유관순이 있었고, 또 수많은 유관순이 있었다는 것을. "나라에 바칠 목숨이 오직 하나밖에 없는 것만이 이 소녀의 유일한 슬픔입니다" 라는 말을 남긴 유관순과, 수많은 영웅들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늘 감사한 마음을 잊지 않고 살아야 한다.
지금의 대한민국을 있게 한, 그리하여 현재의 우리가 있게 한, 100년 전의 대한민국을 지킨 수많은 그분들을 그리며….
경북남부보훈지청 보훈과 박지… kua34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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