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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엄마의 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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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도청본사 취재국장 서인교 작성일19-07-23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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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도청본사 취재국장 서인교[경북신문=신도청본사 취재국장 서인교] 결론적으로 엄마의 지문을 찾는데 열 손가락을 다 살피면서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이는 필자가 인생 중턱에서 엄마의 여권을 만들려고 찾은 행정기관에서 벌어졌다.

  여권의 본인 확인은 엄지손가락의 무지(拇指) 지문을 흔히 확인하지만, 오른손과 왼손을 번갈아 가면서 지문이 나타나지 않아 검지, 중지, 약지, 새끼 손가락인 소지까지 오가며 지문 확인을 했다.

  옆에서 지켜보는 자식은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그만큼 자식 위해 한평생을 희생한 탓에 좀처럼 뚜렷한 지문이 감지되지 않은 것이다. 그동안 엄마는 자식 위한 한평생을 말없이 답한 것으로 느껴졌다. 안타깝기도 했지만, 측은하기도 하고 부끄러웠다.

  엄마의 긴 여정을 여실히 보여 주는 듯 했다, 엄마의 지문이 도무지 나타나지 않는 그 순간을 무의식적으로 답한 것으로 느껴졌다.

  결국 다섯 손가락을 오가며 중지에 이어 네 번째인 약지에서 어렵게, 어렵게 엄마의 지문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엄마는 오른손과 왼손을 번갈아 가며 지문을 채취했음에도 왜 자꾸하는지를 모르고 여직원이 시키는대로 했다.

  없어진 지문을 확인한다는 것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즉, 왜 자꾸 손가락을 확인하는지를.

  사라진 엄마의 지문은 고인이 된 아버지와 처음 만났을때엔 얼마나 선명한 지문이 있었을까?

  엄마는 1937년 10월23일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났단다.

  우리는 그것도 모르고 초년시절, 청년시절을 보냈다. 중년이 돼서야 엄마의 출생 이야기를 듣고 알게 됐다.

  엄마의 여권을 만드는 동기는 이러했다. 필자의 여식이 가족들에게 할머니가 태어난 일본 오사카 여행을 한번 가자고 제안했다. 여식도 서른이 넘어선 싱글이지만 할머니의 고향, 그리움을 알고 있었나보다 생각했다. 참 기특했다.

  그로부터 언제 갈지는 모르지만 준비를 해야 했다. 여식이 곧 연락오리라 생각하고.

  그래서 가까이 동생들이 있지만 장남이랍시고 필자가 엄마의 여권을 만들려고 기관을 찾은 것이다. 여러 가지 지난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그런데 엄마는 얘기했다. 여권을 왜 만드는지도 몰랐다. '그냥 가고 싶으면 주민등록증만 가지고 가면 되지'가 엄마 생각의 전부였다.

  필자는 알려주었다. 여권은 국제적으로 자신을 확인하는 신분증이라고.

  그런데 여권만 나오면 내일 일본으로 가는 줄 알았다. 남들이 생각하면 참 어리석고 나이답지 않다고 할지 모르지만 엄마의 지식과 상식은 이것이 전부였다.

  엄마의 지식의 깊이는 도저히 우리는 알 수가 없다. 단순 무식한지, 그동안 살아온 세월로 보면 더더욱 무식(?)하다고 볼 수는 없다. 엄마의 삶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엄마는 그것이 본인의 살길이고, 자식들에게 살아갈 방법임을 몸소 가르쳐 준 것이다. 

  어린 시절 시골에서 엄마가 행했던 모든 것들이. 그 당시 다들 어려운 상황에서 자신보다 자식을 위해 희생하신 부모님들이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라 생각한다. 필자의 엄마도 그 중 한 분이셨다.

  초년 시절 매일 아침 깨워보면 엄마와 아버지는 보이지 않았다.

  아버지는 부모로부터 쥐꼬리 만한 땅 한마지기를 가지고 장가를 들었다고 했다.

  시집 온 엄마는 단둘이 단칸방에서 결혼생활을 시작했다고도 했다.

  '열심히 일하면 된다'는 막연한 꿈을 가지고 남들보다 더 많이 일을 했다고 했다.

  고로 필자는 초년시절 일년 사시사철 매일 아침 일어나면 엄마와 아버지를 보지 못했다.

  어디간지도 모르고 뒤척이다 보면 들(논과 밭을 의미)에 갔다 오시는 것이었다. 먹고 살아야 한다는 강박관념과 자식들에게 보이지 않는 교육을 시키려고 그랬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도 부모의 희생을 말로는 안다고 하지만, 깊이가 어딘지도 모르는 엄마의 희생은 이루다 말로 표현할 수는 없다. '하면 된다', '꿈은 이루어진다'는 교육을 어려서부터 자식들에게 행동으로 보여주셨다.

  바람 잘 날 없는 엄마는 늘 지식들한테 중얼거렸다. 내가 글을 쓸 줄만 알면 책을 써도 몇권을 썼다고. 말은 해도 글로 표현이 어려웠다는 것이다.

  잘 확인되지 않는 엄마의 지문이 지나 온 세월을 다 한 순간에 보여주었다. 나는 지문이 없어진지도 모르게 내 삶과 자식들을 위해 살았노라고.

  자식들은 부모에게 해야 할 효도의 깊이가 어디까지인지 모르게 살아가고 있다.

  엄마는 없고 자식들만 위해 살아온 우리들의 엄마. 다같이 살아 계실 때 자식된 도리로 효도가 무엇인지 엄마에게 보여 주길 빌어본다. 어머니를, 아니 엄마를 사랑합니다.
신도청본사 취재국장 서인교   kua34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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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출처 : 경북신문 (www.kbs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