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수의 혼 담은 `칠곡 송림사 대웅전`, `대구 동화사 극락전`·`수마제전` 보물 지정 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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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재 작성일21-05-25 16:58본문
↑↑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 예고된 칠곡 송림사 대웅전 내부 모습. [경북신문=장성재기자] 17~18세기에 걸쳐 팔공산을 중심으로 건물을 조영한 목수의 탁월한 실력을 엿볼 수 있다.
17~18세기에 걸쳐 팔공산을 중심으로 당시 기술자 집단인 목수의 탁월한 조형 실력을 엿볼 수 있는 '칠곡 송림사 대웅전'과 '대구 동화사 극락전'·'수마제전'이 보물로 지정 예고됐다.
25일 문화재청은 경북도와 대구시의 유형문화재인 사찰 3건을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 예고한다고 밝혔다.
송림사의 주불전인 '칠곡 송림사 대웅전'은 임진왜란의 전란을 겪은 후 1649년에 중수됐으며 이후 1755년, 1850년 두 차례의 중수를 거쳐 현재 모습으로 남아 있는 건물이다. 대웅전은 정면 5칸, 옆면 3칸 규모인데 17세기 이후 재건한 불전이 정면 3칸, 옆면 2칸을 채택했던 추세와 달리 이전의 규모를 지키고 있다.
평면 규모뿐 아니라 실내구성에서도 당대 흐름인 중앙에 대형 불단을 설치하고 후불벽을 두어 예불공간을 확장시키는 방식을 따르지 않고 옛 방식을 취하고 있다. 공포(처마 끝의 무게를 받치기 위해 기둥머리에 짜 맞추어 댄 나무쪽)의 짜임은 비교적 시기가 올라가는 교두형 공포로 짰는데 이런 유형의 공포는 팔공산 일대 사찰 등에서 집중적으로 나타나는 지역 특색이다. 두 차례의 중수를 거치면서 주칸의 크기를 재조정하고 외관이 달라지는 수준의 큰 변모가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팔공산 일대 사찰건축의 특징이 반영된 옛 부재를 최대한 재사용해 역사성을 잘 계승하고 있다.
↑↑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 예고된 대구 동화사 극락전 내부 모습. 17~18세기에 걸쳐 팔공산을 중심으로 건물을 조영한 목수의 탁월한 실력을 엿볼 수 있다.
'대구 동화사 극락전'은 1600년(선조 33년)에 중건을 시작했고, 그 중 금당(사찰의 본당으로 부처님을 모신 불전)을 제일 먼저 건립했는데 지금의 극락전으로 판단된다. 이후 문헌기록을 통해 1622년에 중창됐음을 확인했다. 임진왜란 이후에 재건된 조선후기 불전 중에서는 건립 시기가 빠른 편에 속하며, 처마와 창호, 단청 등에서 일제강점기 이후의 변화가 확인되지만, 전체적인 구조와 의장은 건립 당시의 상태를 잘 유지하고 있다.
극락전의 공포는 미세한 첨차 길이의 조정을 통해 공포와 공포의 간격을 일정한 비례로 구성하고 있으며, 제공의 내외부 끝을 교두형으로 처리하고 있다. 또한, 추녀와 선자연이 걸리는 모서리 부분 퇴칸의 공포에 병첨을 사용하는 방식에서 이 건물을 조영한 목수의 탁월한 실력을 엿볼 수 있다.
↑↑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 예고된 대구 동화사 수마제전 내부 모습. 17~18세기에 걸쳐 팔공산을 중심으로 건물을 조영한 목수의 탁월한 실력을 엿볼 수 있다.
'대구 동화사 수마제전'은 극락전의 뒤쪽에 있으면서 고금당이라고 전한다. 1465년(세종 11년)에 건립됐고, 임진왜란 뒤 1702년(숙종 28년)에 중창됐다는 기록이 전하며, 현재의 건물도 17세기 이후의 기법과 옛 기법이 공존하고 있다.
수마제전은 사방 1칸 규모로, 다포식 공포를 가지며 맞배지붕으로 된 불전인데, 이처럼 사방 1칸의 다포계 맞배지붕 불전은 현재 국내에서 수마제전이 유일하다. 측면에 공포를 구성하지 않았지만 평방을 구성하고, 귀포의 모습에서 이전에 다포계 팔작지붕 건물이었던 것을 해체해 일부 부재를 재사용해 다시 지으면서 지붕형태가 변경되었을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송림사 대웅전, 동화사 극락전과 수마제전은 17~18세기에 걸쳐 팔공산을 중심으로 영남지역에서 집중적으로 나타나는 지역적 특성과 당시 이 일대에서 주로 활동했던 같은 계보의 기술자 집단에 의해 조영된 건축물"이라면서 "시대적으로 앞서고 각각의 구조적 특징이 나타나 역사, 학술적 조형예술적 측면에서 국가지정문화재로 승격해 보존할 만한 가치가 충분한 것으로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장성재 blowpaper@naver.com
17~18세기에 걸쳐 팔공산을 중심으로 당시 기술자 집단인 목수의 탁월한 조형 실력을 엿볼 수 있는 '칠곡 송림사 대웅전'과 '대구 동화사 극락전'·'수마제전'이 보물로 지정 예고됐다.
25일 문화재청은 경북도와 대구시의 유형문화재인 사찰 3건을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 예고한다고 밝혔다.
송림사의 주불전인 '칠곡 송림사 대웅전'은 임진왜란의 전란을 겪은 후 1649년에 중수됐으며 이후 1755년, 1850년 두 차례의 중수를 거쳐 현재 모습으로 남아 있는 건물이다. 대웅전은 정면 5칸, 옆면 3칸 규모인데 17세기 이후 재건한 불전이 정면 3칸, 옆면 2칸을 채택했던 추세와 달리 이전의 규모를 지키고 있다.
평면 규모뿐 아니라 실내구성에서도 당대 흐름인 중앙에 대형 불단을 설치하고 후불벽을 두어 예불공간을 확장시키는 방식을 따르지 않고 옛 방식을 취하고 있다. 공포(처마 끝의 무게를 받치기 위해 기둥머리에 짜 맞추어 댄 나무쪽)의 짜임은 비교적 시기가 올라가는 교두형 공포로 짰는데 이런 유형의 공포는 팔공산 일대 사찰 등에서 집중적으로 나타나는 지역 특색이다. 두 차례의 중수를 거치면서 주칸의 크기를 재조정하고 외관이 달라지는 수준의 큰 변모가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팔공산 일대 사찰건축의 특징이 반영된 옛 부재를 최대한 재사용해 역사성을 잘 계승하고 있다.
↑↑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 예고된 대구 동화사 극락전 내부 모습. 17~18세기에 걸쳐 팔공산을 중심으로 건물을 조영한 목수의 탁월한 실력을 엿볼 수 있다.
'대구 동화사 극락전'은 1600년(선조 33년)에 중건을 시작했고, 그 중 금당(사찰의 본당으로 부처님을 모신 불전)을 제일 먼저 건립했는데 지금의 극락전으로 판단된다. 이후 문헌기록을 통해 1622년에 중창됐음을 확인했다. 임진왜란 이후에 재건된 조선후기 불전 중에서는 건립 시기가 빠른 편에 속하며, 처마와 창호, 단청 등에서 일제강점기 이후의 변화가 확인되지만, 전체적인 구조와 의장은 건립 당시의 상태를 잘 유지하고 있다.
극락전의 공포는 미세한 첨차 길이의 조정을 통해 공포와 공포의 간격을 일정한 비례로 구성하고 있으며, 제공의 내외부 끝을 교두형으로 처리하고 있다. 또한, 추녀와 선자연이 걸리는 모서리 부분 퇴칸의 공포에 병첨을 사용하는 방식에서 이 건물을 조영한 목수의 탁월한 실력을 엿볼 수 있다.
↑↑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 예고된 대구 동화사 수마제전 내부 모습. 17~18세기에 걸쳐 팔공산을 중심으로 건물을 조영한 목수의 탁월한 실력을 엿볼 수 있다.
'대구 동화사 수마제전'은 극락전의 뒤쪽에 있으면서 고금당이라고 전한다. 1465년(세종 11년)에 건립됐고, 임진왜란 뒤 1702년(숙종 28년)에 중창됐다는 기록이 전하며, 현재의 건물도 17세기 이후의 기법과 옛 기법이 공존하고 있다.
수마제전은 사방 1칸 규모로, 다포식 공포를 가지며 맞배지붕으로 된 불전인데, 이처럼 사방 1칸의 다포계 맞배지붕 불전은 현재 국내에서 수마제전이 유일하다. 측면에 공포를 구성하지 않았지만 평방을 구성하고, 귀포의 모습에서 이전에 다포계 팔작지붕 건물이었던 것을 해체해 일부 부재를 재사용해 다시 지으면서 지붕형태가 변경되었을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송림사 대웅전, 동화사 극락전과 수마제전은 17~18세기에 걸쳐 팔공산을 중심으로 영남지역에서 집중적으로 나타나는 지역적 특성과 당시 이 일대에서 주로 활동했던 같은 계보의 기술자 집단에 의해 조영된 건축물"이라면서 "시대적으로 앞서고 각각의 구조적 특징이 나타나 역사, 학술적 조형예술적 측면에서 국가지정문화재로 승격해 보존할 만한 가치가 충분한 것으로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장성재 blowpap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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