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관 특별기고] 국민 기본소득 토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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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전문가 고영관 작성일21-05-19 19:45본문
↑↑ IT전문가 고영관근래,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가 그 끝을 보여주지 않고 있는 가운데 전통적인 자본주의 경제체제가 위협받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내가 보기엔, C19가 반드시 전통 경제체제를 위협한다기보다는, 그 이전에 시작된 제4차 산업혁명이 이미 우리에게 새로운 사회구조의 변화를 요구한 것인데, 다만 C19가 그 시기를 재촉한 것일 뿐이다.
우리가 그간 지향해온 자본주의 시장경제란 마치 달리는 자전거와 같아서, 주행을 멈추면 넘어질 수밖에 없고, 계속 가속 페달을 밟지 않으면 안 되는 그런 것이었다. 그런데 모든 생명체가 성장기(成長期)를 거치면, 정체기(停滯期)가 도래하고, 그 다음 쇠퇴기(衰退期)를 맞이할 수밖에 없는 것이 자연의 섭리이듯이, 인간의 무한한 탐욕을 제어하지 못하는 자본주의 경제 역시 지속적인 성장은 불가능한 것이며, 반드시 한계상황을 맞이하도록 되어 있었던 게 아닐까?
요즘, 정치인들이나 학자들이 모여 연일 경제성장 정책이나 일자리 창출을 말하고 있지만, 성장판(成長板)이 다한 30세 청년에게 보약을 먹인다고해서 키가 더 성장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원래 자본주의 경제 하에서의 일자리란, 노동력 수요에 의해 발생하는 것일 뿐, 노동을 위한 일자리 창출은 억지스럽다. 몸이 아프니 약을 먹는 것인데, 약을 소비시키기 위해 아프라 할 것인가? 그 얘기다.
나 같은 무명인의 말을 누가 귀담아 들었을까마는, 나는 제4차 산업혁명에 관한 기본적인 개념조차 존재하지 않았을 것 같은 시기, 상당히 오래전에, 소위 ICT(information and communications technology)가 결국 인간을 노동으로 부터 해방시켜 주리라 오히려 기대했었는데, 문제는 인류가 무노동 (無勞動)사회를 긍정적(Positive)으로 받아들일 것인가? 아니면 부정적(Negative)으로 받아들일 것인가에 있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나는 사람들이 그다지 치열하게 경쟁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 노동하지 않아도 생계가 보장되는 사회가 반드시 요원하기만 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며, 지금은 단지 그 과도기의 진통을 겪고 있을 뿐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러니까 오직 노동력으로 부(富)를 생산하여 생존수단을 확보해야 했던 인류가, 무엇이던 비축하려는 '탐욕'이라는 DNA를 생성시킨 것은 자연적인 현상으로 보인다. 그런데 만일, 노동하지 않아도 모든 사람이 생존할 수 있는 식량과 부가 확보된다면, 아마도 사람들의 탐욕 DNA는 퇴화되지 않을까?
때문에 나는 제4차 산업혁명을 두려워하기보다는 오히려 더욱 적극적으로 수용하기만 한다면, 현재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이 최소한의 풍요를 유지한 채로도 첨단 기술혁신에 의한 무노동 사회 건설이 전혀 불가능하지 않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현재 선별적 복지와 기본소득을 놓고 모두 자신의 주장이 옳다고 하는데, 대다수의 사람들이 직장을 가지고 노동이 주된 생계수단인 시대에는 논란의 여지없이 선별적 복지가 주효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반대로 대다수의 사람들이 소속된 직장을 잃게 된다면, 다른 생계수단이 전혀 없는 사람들에게 기본소득 지급 외에 무슨 방법이 있다는 것인지? 물론 이 경우 당연히 재원(財源)을 문제 삼겠지만, 내 대답은 지극히 간단하다.
즉, 모든 사람들의 생계를 위해 필요한 부(富)의 총량은 변함이 없는데, 그 부의 생산 방식과 분배 방식의 변화가 있을 뿐이기에, 우리에게는 공멸(共滅)의 길과 공존(共存)의 길 중에 택일(擇一)해야 하는 선택만이 남은 과제일 뿐이라는 얘기다.
IT전문가 고영관 kua348@naver.com
우리가 그간 지향해온 자본주의 시장경제란 마치 달리는 자전거와 같아서, 주행을 멈추면 넘어질 수밖에 없고, 계속 가속 페달을 밟지 않으면 안 되는 그런 것이었다. 그런데 모든 생명체가 성장기(成長期)를 거치면, 정체기(停滯期)가 도래하고, 그 다음 쇠퇴기(衰退期)를 맞이할 수밖에 없는 것이 자연의 섭리이듯이, 인간의 무한한 탐욕을 제어하지 못하는 자본주의 경제 역시 지속적인 성장은 불가능한 것이며, 반드시 한계상황을 맞이하도록 되어 있었던 게 아닐까?
요즘, 정치인들이나 학자들이 모여 연일 경제성장 정책이나 일자리 창출을 말하고 있지만, 성장판(成長板)이 다한 30세 청년에게 보약을 먹인다고해서 키가 더 성장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원래 자본주의 경제 하에서의 일자리란, 노동력 수요에 의해 발생하는 것일 뿐, 노동을 위한 일자리 창출은 억지스럽다. 몸이 아프니 약을 먹는 것인데, 약을 소비시키기 위해 아프라 할 것인가? 그 얘기다.
나 같은 무명인의 말을 누가 귀담아 들었을까마는, 나는 제4차 산업혁명에 관한 기본적인 개념조차 존재하지 않았을 것 같은 시기, 상당히 오래전에, 소위 ICT(information and communications technology)가 결국 인간을 노동으로 부터 해방시켜 주리라 오히려 기대했었는데, 문제는 인류가 무노동 (無勞動)사회를 긍정적(Positive)으로 받아들일 것인가? 아니면 부정적(Negative)으로 받아들일 것인가에 있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나는 사람들이 그다지 치열하게 경쟁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 노동하지 않아도 생계가 보장되는 사회가 반드시 요원하기만 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며, 지금은 단지 그 과도기의 진통을 겪고 있을 뿐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러니까 오직 노동력으로 부(富)를 생산하여 생존수단을 확보해야 했던 인류가, 무엇이던 비축하려는 '탐욕'이라는 DNA를 생성시킨 것은 자연적인 현상으로 보인다. 그런데 만일, 노동하지 않아도 모든 사람이 생존할 수 있는 식량과 부가 확보된다면, 아마도 사람들의 탐욕 DNA는 퇴화되지 않을까?
때문에 나는 제4차 산업혁명을 두려워하기보다는 오히려 더욱 적극적으로 수용하기만 한다면, 현재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이 최소한의 풍요를 유지한 채로도 첨단 기술혁신에 의한 무노동 사회 건설이 전혀 불가능하지 않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현재 선별적 복지와 기본소득을 놓고 모두 자신의 주장이 옳다고 하는데, 대다수의 사람들이 직장을 가지고 노동이 주된 생계수단인 시대에는 논란의 여지없이 선별적 복지가 주효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반대로 대다수의 사람들이 소속된 직장을 잃게 된다면, 다른 생계수단이 전혀 없는 사람들에게 기본소득 지급 외에 무슨 방법이 있다는 것인지? 물론 이 경우 당연히 재원(財源)을 문제 삼겠지만, 내 대답은 지극히 간단하다.
즉, 모든 사람들의 생계를 위해 필요한 부(富)의 총량은 변함이 없는데, 그 부의 생산 방식과 분배 방식의 변화가 있을 뿐이기에, 우리에게는 공멸(共滅)의 길과 공존(共存)의 길 중에 택일(擇一)해야 하는 선택만이 남은 과제일 뿐이라는 얘기다.
IT전문가 고영관 kua34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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