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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경환의 佛紀 2565년 부처님 오신 날 특집 연재] 不死에 이르는 명확한 로드맵, 반야심경 역해 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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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불전연구원 선임 연구원 … 작성일21-05-20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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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기불전연구원 선임 연구원 황경환그 외에도 일본 선불교의 조동종 본산인 영평사(永平寺)의 고승 사토 타이진(佐藤太神)에 의한 심경 말미의 이상한 해석, 또 고야산 진언종(眞言宗) 본산의 홍법대사(弘法大師)를 비롯하여, 일본의 불교학자이자 교육자로 동경대학 교수와 미국 하버드 대학과 스탠퍼드 대학 객원교수를 역임한 나까무라 하지메(中村元, 1912~1999년) 번역 역시도 사실 반야심경의 본뜻에는 거리가 있고, 그 가운데 특별한 한 분이 있는데 역시 일본의 동경대학에서 선불교를 공부한 스즈키 다이세쯔(鈴木大拙) 박사다.
   이분은 1870년에 태어나 1966년에 열반에 들었는데, 세계 최초로 미국에 중국의 선불교를 처음 전파한 사람으로서 관자재보살이 대 반야바라밀경 600부 내용 어디에도 없는데 유독 소본과 대본에 딱 한 차례씩 출현한다는 것을 알아낸 것은 자신이라고 말한 사람이다. 이 외에도 반야심경을 번역한 사람들은 수없이 많다.
   그런데 대다수가 중국의 현장 스님이 중국 언어로 된 한문 번역을 위주로 한 번역이다. 이제 마지막으로 한 사람만 더 소개하면 1991년에 출간된 이후 사실인지는 몰라도 '30여 년간을 일본 독자들에게 사랑받는 스테디셀러 최고의 해설서'라는 수식어가 붙어있는 야마나 테츠시(山名哲史)가 지은 '인문학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반야심경'이 있는데 나는 인문학을 좋아하는, 등의 색다른 부재에 솔깃해서 또 한 번 부린 호기심은 여지없이 실망스러움 그 자체였다. 참으로 우리 절 집안의 축원문에 등장하는 각각등보체(各各等保体)라는 말이 실감난다.
   그러면 한국의 불교학자와 출가하신 스님을 비롯한 여러 재가 불자들이 번역한 다수의 반야심경 해설서는 어떠한가? 지금까지 내가 아는 바에 의하면 두말할 나위 없이 하나같이 반야심경의 본뜻과는 거리가 멀다고 반문할 수밖에 없다.
   여기에 대한 문제점은 '반야심경 역해', '프라즈냐아 파아라미타 흐리다야수트라'(김사철, 황경환 지음)의 23쪽 '번역을 하는 데 있어서'와 36쪽 '반야심경 주석들의 편'에서 대충 밝혀 놓았다.
   여기서 대충이란 말은 번역이란 문제는 해석학적 문제와 연결되기 때문에 이러한 문제를 다루는 것이 '해석학(hermene utics)'이라면 고대의 한 언어를 수백년, 또는 수천년 후에 그 말을 한 사람의 하고자 한 뜻을 그 단어에 대한 글자 풀이로 가능한 것은 아니다.
   왜냐면 글로서는 다 표현을 할 수 없는 말한 사람의 인간적 경험은 현대적 언어로 다시 유추 한다는 것 자체가 간단하지 않다는 말이다. 그것은 김 박사님과 함께 본인이 반야심경을 같이 번역을 하면서 더 절실하게 느낀 바다.
   여기에서 한 예를 들면 나는 20대 후반부터 고 이기영 박사님이 원장으로 계셨던 한국불교연구원에서 25여년을 대승불교 경전군에 속하는 화엄경, 법화경, 대승기신론, 유마힐 소설경, 용수의 반야중관, 무착과 세친의 유식(唯識)을 비롯한 원효사상 등을 배웠다.
   그래서 당시 이기영 박사님은 한국불교계의 큰 선지식으로 존경받는 분이라는 사실은 한국 불교학회에서는 널리 알려져 있었다. 그래서 박사님은 대승불교학을 가르쳐준 나의 고마운 스승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이기영 박사님은 반야심경 해석을 어떻게 했는가이다.
   내가 알고 이해한 바로는 이 박사님의 반야심경 해석은 일본의 나까무라 하지메(中村元)의 반야심경 해석본과 한문 반야심경을 대조해 가면서 우리말로 번역을 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여기에는 큰 오류가 있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 오류는 반야심경 전체의 핵심은 두말할 나위 없이 심경말미의 5개의 만트라로 귀결시키면서 그것은 바로 시대신주, 시대명주, 시무상주, 시무등등주이고 인간의 모든 고통을 없애주는 만트라라고 극찬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기영 박사님은 당신의 반야심경 해석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이것은(다섯개의 만트라를 칭함) 논리적으로 사족과 같은 부분으로 없어도 되는 구절이 아닌가 한다. 전편을 흐르는 일관된 정신이 문언(文言)이나 명색(明色)이 다 허망함을 강조하고 있는데, 구태여 주(만트라)를 강조한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싶다. 반야바라밀다를 문구로 생각하게 할 표현이 '반야바라밀다주'로서 제시되었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이 가지 않는 대목이다.
   차라리 원전은 이것 없이 끝나야 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한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이외에도 '반야심경'에 대한 번역과 주석은 너무나 많다. 일종의 '반야심경 산업'이 형성되어 있다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정도다. 과연 그것이 그런가?
초기불전연구원 선임 연구원 …   kua34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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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출처 : 경북신문 (www.kbs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