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관 특별기고] 진화(進化)하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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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전문가 고영관 작성일21-07-26 18:36본문
↑↑ IT전문가 고영관특정한 국가에서 태어나 자란 사람은 누구나 그 나라의 이데올로기와 문화에 익숙해지기 마련인데, 그것은 마치 동일한 부품과 동일한 공정으로 제작된 컴퓨터일지라도 '리눅스'라는 운영체계(OS)가 설치되면 리눅스 컴퓨터가 되고, '윈도우'라는 운영체계가 심어지면 윈도우 컴퓨터가 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즉, 두 개의 컴퓨터가 공히 워드나 그래픽 기능을 구현한다고 할지라도 각기 다른 코드와 알고리즘으로 정보를 처리하기 때문에 서로 호환성을 가지기 어려운 문제가 발생한다는 얘기다.
'윈도우'에 익숙해진 유저들에게 아무리 '리눅스'의 장점을 얘기한다 해도 이미 자신의 스토리지에 저장된 데이터들이 윈도우 파일인 경우 리눅스에서 사용할 수 없는 일이 발생할 뿐만 아니라 이미 익숙해진 운영체계를 버리고 새로운 운영체계에 적응하려는 노력 자체를 부담스러워하기 마련일 것이다.
인간 사회에 정치라는 행위가 시작된 이래, 늘 개혁은 있어 왔지만 개혁이 쉽지 않은 이유가 바로 그것인데, 능률적인 새로운 체계에 적응하기 보다는 좀 비합리적일지라도 익숙해진 체계를 선호하는 사람들을 보수주의자라 불러도 될는지 모르겠지만, 진보주의자라고 해서 반드시 변화를 좋아하거나 합리적인 사람들로 보기는 어렵기 때문에, 이제 우리사회에서 그런 종류의 성향 구분은 이쯤에서 그만 두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해방이후 서양세계의 이데올로기인 자유민주주의가 우리 정치에 도입된 이래 영원한 여당도 영원한 야당도 없었지만, 변함없이 유지되어 온 것은 기득권과 비기득권의 구분이 아니었을까?
기득권과 비기득권은 어쩌면 인류가 공동생활을 영위하면서부터 시작된 계층 구분이었을 수도 있을 것인데, 소수의 지배계급과 다수의 피지배계급이라는 사회구조는 어느 시대, 어느 나라의 어떤 정치체계 내에서도 존재하여왔고, 전제군주 왕정시대를 지나 자유민주주의가 인류의 보편적 가치로 자리매김 된 지금도 달라지지 않은 것이 현실로 보인다.
꼬리 달린 사족보행(四足步行) 동물에서 꼬리 없는 이족보행(二足步行) 동물로 진화된 인류라고 하지만, 아직도 우리 몸속에 진화의 흔적인 꼬리뼈를 간직하고 있듯이, 영국이나 일본을 비롯한 다수의 국가들은 민주주의라 하면서도 여전히 과거의 잔재인 왕실의 권위를 보지(保持)하고 있는 바, 우리나라는 대한민국을 건국하면서 왕실은 폐지하였으나 그 대신 제왕적 대통령중심제를 선택하였다.
대통령과 동일한 정치노선을 가진 정당을 여당이라 하는 반면 그 반대를 야당이라 부르고 있지만, 여당과 야당은 번갈아가면서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것은 기득권과 비기득권일 것이다. 그러니까 비기득권의 입장에서만 보면 집권을 어느 쪽에서 하든 그것은 그들만의 리그일 뿐, 비기득권의 지위가 달라진 적은 없다는 말이 된다.
여당에 몸담고 있던 정치인들이나 여당 치하에서 고위 관료를 지내던 사람들이 줄줄이 야당으로 줄을 바꾸어 가는 것은 마치 고급 승용차를 탄 사람들이 이리 저리 차선을 바꾸어가며 앞으로 먼저 나아가려는 것과 조금도 달라 보이지 않는다.
산적(山賊)이 지배하든 해적(海賊)이 재배하든 피지배자의 삶에 어떤 변화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인가? 고급 승용차를 타는 사람들과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늘 그대로인데, 그들은 때만 되면 바꾸어야 한다고 목청을 높인다.
페스트(Pest)가 유럽을 휩쓴 뒤, 중세 암흑기가 끝나고 르네상스를 맞이하게 되었듯이, C19가 이 세계를 휩쓸고 간 후에는 아마도 새로운 개념, 진정한 의미의 재민주권(在民主權) 시대가 열릴지도 모를 일이다.
따라서 이번 대선이야말로 진보나 보수, 계파나 출신 따위의 구분보다는 누가 개혁이 아닌 혁명을 완성시킬 인물인가를 판단해야 옳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기득권과 비기득권의 권리와 지위를 서로 바꾸자는 것이 아니라 기득권과 비기득권의 권리가 동등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IT전문가 고영관 kua348@naver.com
즉, 두 개의 컴퓨터가 공히 워드나 그래픽 기능을 구현한다고 할지라도 각기 다른 코드와 알고리즘으로 정보를 처리하기 때문에 서로 호환성을 가지기 어려운 문제가 발생한다는 얘기다.
'윈도우'에 익숙해진 유저들에게 아무리 '리눅스'의 장점을 얘기한다 해도 이미 자신의 스토리지에 저장된 데이터들이 윈도우 파일인 경우 리눅스에서 사용할 수 없는 일이 발생할 뿐만 아니라 이미 익숙해진 운영체계를 버리고 새로운 운영체계에 적응하려는 노력 자체를 부담스러워하기 마련일 것이다.
인간 사회에 정치라는 행위가 시작된 이래, 늘 개혁은 있어 왔지만 개혁이 쉽지 않은 이유가 바로 그것인데, 능률적인 새로운 체계에 적응하기 보다는 좀 비합리적일지라도 익숙해진 체계를 선호하는 사람들을 보수주의자라 불러도 될는지 모르겠지만, 진보주의자라고 해서 반드시 변화를 좋아하거나 합리적인 사람들로 보기는 어렵기 때문에, 이제 우리사회에서 그런 종류의 성향 구분은 이쯤에서 그만 두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해방이후 서양세계의 이데올로기인 자유민주주의가 우리 정치에 도입된 이래 영원한 여당도 영원한 야당도 없었지만, 변함없이 유지되어 온 것은 기득권과 비기득권의 구분이 아니었을까?
기득권과 비기득권은 어쩌면 인류가 공동생활을 영위하면서부터 시작된 계층 구분이었을 수도 있을 것인데, 소수의 지배계급과 다수의 피지배계급이라는 사회구조는 어느 시대, 어느 나라의 어떤 정치체계 내에서도 존재하여왔고, 전제군주 왕정시대를 지나 자유민주주의가 인류의 보편적 가치로 자리매김 된 지금도 달라지지 않은 것이 현실로 보인다.
꼬리 달린 사족보행(四足步行) 동물에서 꼬리 없는 이족보행(二足步行) 동물로 진화된 인류라고 하지만, 아직도 우리 몸속에 진화의 흔적인 꼬리뼈를 간직하고 있듯이, 영국이나 일본을 비롯한 다수의 국가들은 민주주의라 하면서도 여전히 과거의 잔재인 왕실의 권위를 보지(保持)하고 있는 바, 우리나라는 대한민국을 건국하면서 왕실은 폐지하였으나 그 대신 제왕적 대통령중심제를 선택하였다.
대통령과 동일한 정치노선을 가진 정당을 여당이라 하는 반면 그 반대를 야당이라 부르고 있지만, 여당과 야당은 번갈아가면서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것은 기득권과 비기득권일 것이다. 그러니까 비기득권의 입장에서만 보면 집권을 어느 쪽에서 하든 그것은 그들만의 리그일 뿐, 비기득권의 지위가 달라진 적은 없다는 말이 된다.
여당에 몸담고 있던 정치인들이나 여당 치하에서 고위 관료를 지내던 사람들이 줄줄이 야당으로 줄을 바꾸어 가는 것은 마치 고급 승용차를 탄 사람들이 이리 저리 차선을 바꾸어가며 앞으로 먼저 나아가려는 것과 조금도 달라 보이지 않는다.
산적(山賊)이 지배하든 해적(海賊)이 재배하든 피지배자의 삶에 어떤 변화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인가? 고급 승용차를 타는 사람들과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늘 그대로인데, 그들은 때만 되면 바꾸어야 한다고 목청을 높인다.
페스트(Pest)가 유럽을 휩쓴 뒤, 중세 암흑기가 끝나고 르네상스를 맞이하게 되었듯이, C19가 이 세계를 휩쓸고 간 후에는 아마도 새로운 개념, 진정한 의미의 재민주권(在民主權) 시대가 열릴지도 모를 일이다.
따라서 이번 대선이야말로 진보나 보수, 계파나 출신 따위의 구분보다는 누가 개혁이 아닌 혁명을 완성시킬 인물인가를 판단해야 옳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기득권과 비기득권의 권리와 지위를 서로 바꾸자는 것이 아니라 기득권과 비기득권의 권리가 동등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IT전문가 고영관 kua34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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