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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식 생활칼럼] 내 안의 무늬가 또 꿈틀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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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 김혜식 작성일21-07-22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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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필가 김혜식남실바람에 숲의 나뭇잎이 흔들렸다. 숲이 안겨주는 향취에 도취돼 잠시 눈을 감았다. 향기로운 풀내음이 나른한 심신에 활기를 넣어주려는가. 잠시 모든 사물이 정지되는가 싶더니 가슴 속이 청량함으로 가득 차올랐다. 그렇게 신록이 우거진 숲 속에서 고단한 심신을 쉬려던 참이었다.
   갑자기 하늘이 낮게 내려앉으며 천지가 자욱해 왔다. 순식간에 국지성 소나기가 쏟아졌다. 미처 우산을 준비 못하여 온몸으로 비를 흠뻑 맞았다. 이 때 겉옷이 빗방울에 축축이 젖어들었다. 비를 맞아 꿉꿉하기보다는 가슴 속 켜켜이 쌓인 세진世塵마저 시원스레 씻기는 듯하여 외려 상쾌하다.
   돌이켜보니 사춘기 소녀 시절부터 비 오는 날을 좋아하였다. 그래서일까. 비가 내릴 때 그 눅눅함이 오랜 벗처럼 반갑기조차 하다. 그래 이렇듯 비가 소리치며 쏟아지는 날은 나로 하여금 깊은 사색에 잠기게 한다. 내 마음을 고독의 당의정으로 입히려 하는가.
   고독은 때론 우울함을 동반한다. 이때마다 나의 가슴 속엔 갖가지 상념의 무늬가 수를 놓곤하였다. 정체모를 막연한 그리움, 삶의 번민, 헛된 욕심들이 스멀스멀 가슴 속으로 숨어든다. 어느 사이 마음속에 욕망의 무늬로 자리해 날이 갈수록 몸집을 불리고 키를 키우려 한다.
   생각해보면 그동안 얼마나 숱한 세월, 마음속에 수많은 덧씌움을 꿈꾸어 왔던가. 비록 그것이 가슴 저린 외로움을 벗어나기 위한 나만의 안간힘일지언정, 어찌 보면 과욕을 향한 질주였다는 표현이 더 적합할지도 모른다. 헛된 욕망은 고통으로 그 몸집을 불려 마음에 수없이 곡괭이질을 해대었다. 그럴 때마다 손끝이 닿지 않는 곳의 행복을 탐하며 이룰 수 없는 꿈에 절망하고 슬퍼했다.
   지난날 흙바람을 가슴으로 맞받아가며 인생의 거친 들판을 홀로 걸을 때도 결코 나는 혼자가 아니라고 서러운 자위를 해야 했다. 어느 곳에도 진정어린 가슴으로 나를 안아줄 동행자가 없었다고나 할까. 홀로 태어나 혼자 자연으로 돌아간다는 말이 맞는 말이던가.
   제 아무리 아름다운 꽃들도 멋진 비경도 견줄 상대가 없으면 그 진가를 가늠하기 어렵다. 현재 삶도 냉혹한 현실이라는 무대가 없었으면 영육의 담금질도 별 의미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늘 고독에 몰입하며 나만의 무늬를 가슴에 새기길 즐겼다. 하지만 그것은 한낱 이기심에 물든 눈대중만으로 수놓은 무늬에 불과 하였다.
   이젠 그 허상을 훌훌 벗고 싶다. 그리곤 진실의 무늬를 나의 삶에 아름답게 수놓고 싶다. 이런 생각에 이르자 '지난 삶이 모양새만 갖춘 무늬가 전부는 아니었을까' 하는 성찰에 절로 손이 가슴으로 간다. 혹여 나는 무늬뿐인 아내, 어머니, 딸은 아니었는지 하는 자괴감도 가슴을 짓누른다. 겉치레적인 무늬는 덧씌우려 애쓸수록 쉽사리 흔적을 지우기 마련이다. 지금이라도 가슴 속에 그릇된 무늬를 전부 과감히 지워 버리고 싶다. 허황된 덧씌움의 무늬만 존재하는 삶은 위선이 아니던가.
   마음의 무늬를 떠올리려니 조상님들이 세간에 붙이고 새겨 넣은 무늬가 문득 떠오른다. 그것을 자세히 살펴보면 자연과 조화, 우주만물의 근원 처를 생각하며 진실한 마음으로 수를 놓았다. 인간은 자연의 일부며 자연과 어울려 순리대로 살아야 한다는 겸허한 인생철학이 그 속에 배어 있잖은가.
   하다못해 자물쇠에 새겨진 물고기 무늬만 보더라도 물고기는 밤에도 눈을 뜨고 잔다고 하여 도둑을 지키는 수호신으로 삼았다. 안방 살림의 장석 문양으로 사용된 박쥐는 장수, 부귀, 강녕 등의 오복을 상징하는 상서로운 동물로 여기기도 했잖은가. 박쥐는 밤눈이 밝다하여 집을 지켜 주는 수호의 상징물임과 동시에 잡귀를 쫓는 의도로도 사용했다.
   솜씨 좋은 친정어머니께선 혼수용품인 나의 베갯잇에 국화, 대나무, 매화 등의 무늬를 수놓아 주었다. 국화는 건강, 장수를 의미했고 대나무는 곧은 성격과 완전무결한 지조를 지니고 살아가기를 소망하는 마음에서였을 것이다.
   어머니가 베갯잇에 수놓아준 무늬가 요즘 따라 예사롭지 않게 느껴짐은 어인일 일까. 심지어 그것을 떠올릴 때마다 내 안에서 그 무늬들이 되살아나 꿈틀거리기 시작 했다. 이러한 무늬의 힘찬 태동은 진실과 부덕의 무늬를 가슴에 아로새기라고 종용 하는 듯했다. 뿐만 아니라 단순한 덧씌움이 아닌 격조 높은 삶의 자세를 잃지 말라고 채찍질하기도 한다. 마음 자락에 인생의 참다운 무늬를 수놓으며 더욱 겸허한 자세로 살라고 일러주는 게 아닌가.
   그렇다. 비로소 내 안에 진선미의 무늬를 수놓을 수 있는 기회를 새로이 얻었지 싶다.
수필가 김혜식   kua34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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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출처 : 경북신문 (www.kbs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