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영지 문화칼럼] 요절한 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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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 홍영지 작성일21-07-18 18:52본문
↑↑ 수필가 홍영지중학교 2학년 때다. 앞자리에 앉은 친구가 내게 시집 한 권을 선물로 주었다. 김광균의 '와사등'이라고 기억한다. 60년이 넘게 지나간 지금에도 두어 줄의 싯귀가 가슴에 남아 있다. '내 어디로 어떻게 가라는 슬픈 신호기/ 차단한 등불 하나 비인 하늘에 걸리어 있다'
그 친구는 시인이 되고 싶어 했다. 그러나 그는 대학교에 들어가 졸업도 안하고 스스로 '빈 하늘에 걸린' 차단한 등불을 좇아 홀홀히 떠나버렸다. 그의 시는 끝내 읽어보지 못했다.
잘 알려진 우리나라의 문인들 중 요절한 문인이 네 명 있다. 김유정, 이상, 윤동주는 서른 해를 채우지 못했고 김민부는 서른한 살에 이 세상을 떠났다.
김유정은 스물일곱에 신춘문예로 등단하여 죽기 2,3년 사이에 수많은 명작단편을 쏟아내어 독자들을 놀라게 하였다. '봄봄' '동백꽃' '땡볕'등은 너무나 잘 알려진 대표작이다. 그의 사랑 이야기는 문인들 사이에 익히 알려져 있다. 그가 한 여인을 죽을 듯이 사랑하였다. 그 여인은 신분이 남들에게 내세울만한 처지가 아니었다. 김유정은 미친 듯이 찾아다녔지만 그녀는 한사코 피하며 만나주지 않았다.
김유정의 모습이 너무 애처로워 당시 선배였던 이은상 시인이 위로의 시를 썼다. '탈대로 다 타시오/ 타다말진 부디마소...탈진대 재 그것조차/ 마저 탐이 옳느니다' 그렇게 온 맘을 다해 사랑했으니 이젠 깨끗이 잊으라는 시인다운 간곡한 위로다. 그 시에 홍난파가 곡을 붙인 노래가 '사랑'이다.
이상(본명 김해경)은 스스로를 '박제된 천재'라 칭했다. 그는 자기 삶을 아웃사이더로 방관하였다. 그의 소설 '날개'에 그 모습이 소상하게 그려져 있다. 시대를 잘못 만난 천재의 삶의 방식이었는지 모른다. '날자. 날자꾸나. 한 번 만 더 날자꾸나' 마지막 부분의 절규가 가슴을 울린다. 요즘 세상을 보며 '오감도' 중 '시 제1호'를 다시 생각해 본다. 우리는 모두 무서워하는 사람이면서 무서운 사람으로 변해가고 있는 것이 아닌지.
김유정과 이상은 동시대 사람으로 김유정이 두 살 위였다. 둘은 다 폐결핵으로 같은 해 앞서고 뒤서며 총총히 먼 나라로 떠났다. 김유정이 스물아홉, 이상은 스물일곱의 나이었다.
민족시인으로 잘 알려진 윤동주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사랑 받는 시인 중의 한 명이다. 그의 '서시'와 '별 헤는 밤'은 학창시절 누구든 한 번 쯤은 읊어보았으리라 짐작된다. 그는 스물일곱의 나이로 옥사하였다. 근래 중국은 그를 자기나라 사람이라 우긴다. 연변 출신의 조선족이니 자기들의 소수민족이란 주장이다. 참으로 어이없는 떼거지다.
'일출봉에 해 뜨거든 날 불러주오'로 시작하는 노래 '기다리는 마음'의 가사를 쓴 이는 김민부 시인이다. 그는 고등학생 때 이미 시집을 내었다. 시인과 방송작가로 기대를 모으며 한창 활동할 나이에 화재로 숨졌다. 그 때 나이 서른하나였다. 그의 시에 역시 장일남 씨가 곡을 붙인 노래가 하나 더 있다. '석류'라는 시다. '불타오르는 정열에/ 앵토라진 입술로/ 남몰래 숨겨온/ 말 못할 그리움아/ 이제야 가슴 뻐개고/ 나를 보라 하더라'
외국시인으로는 알아둘만한 사람이 두 명 있다.
이하(李賀)는 중국에서 자기만의 독창적인 시세계를 이룬 4대가 중의 한 사람으로 추앙받는다. 시성(詩聖)두보, 시선(詩仙)이백, 시불(詩佛)왕유 그리고 이하를 시귀(詩鬼)라 부른다. 그는 유혼(幽魂)의 세계를 많이 노래하였다. 요절을 예감했기 때문일까. 스물일곱에 죽었다.
로트레아몽은 프랑스귀족 출신으로 기이하고 불가사이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장편 산문시집 '말도로르의 노래'는 인간과 신에 대한 불신 그리고 저주로 가득 차 있다. 이 책은 보들레르와 랭보, 쉬르레알리즘 시인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겨우 스물넷 나이에 죽었다.
"천재란 필경 일정한 궤도에 따라 운행되는 유성이 아니라 우연히 지상에 나타났다가 홀연히 사라지는 유성과도 같은 존재다" 유명한 롬브로즈의 말이다.
수필가 홍영지 kua348@naver.com
그 친구는 시인이 되고 싶어 했다. 그러나 그는 대학교에 들어가 졸업도 안하고 스스로 '빈 하늘에 걸린' 차단한 등불을 좇아 홀홀히 떠나버렸다. 그의 시는 끝내 읽어보지 못했다.
잘 알려진 우리나라의 문인들 중 요절한 문인이 네 명 있다. 김유정, 이상, 윤동주는 서른 해를 채우지 못했고 김민부는 서른한 살에 이 세상을 떠났다.
김유정은 스물일곱에 신춘문예로 등단하여 죽기 2,3년 사이에 수많은 명작단편을 쏟아내어 독자들을 놀라게 하였다. '봄봄' '동백꽃' '땡볕'등은 너무나 잘 알려진 대표작이다. 그의 사랑 이야기는 문인들 사이에 익히 알려져 있다. 그가 한 여인을 죽을 듯이 사랑하였다. 그 여인은 신분이 남들에게 내세울만한 처지가 아니었다. 김유정은 미친 듯이 찾아다녔지만 그녀는 한사코 피하며 만나주지 않았다.
김유정의 모습이 너무 애처로워 당시 선배였던 이은상 시인이 위로의 시를 썼다. '탈대로 다 타시오/ 타다말진 부디마소...탈진대 재 그것조차/ 마저 탐이 옳느니다' 그렇게 온 맘을 다해 사랑했으니 이젠 깨끗이 잊으라는 시인다운 간곡한 위로다. 그 시에 홍난파가 곡을 붙인 노래가 '사랑'이다.
이상(본명 김해경)은 스스로를 '박제된 천재'라 칭했다. 그는 자기 삶을 아웃사이더로 방관하였다. 그의 소설 '날개'에 그 모습이 소상하게 그려져 있다. 시대를 잘못 만난 천재의 삶의 방식이었는지 모른다. '날자. 날자꾸나. 한 번 만 더 날자꾸나' 마지막 부분의 절규가 가슴을 울린다. 요즘 세상을 보며 '오감도' 중 '시 제1호'를 다시 생각해 본다. 우리는 모두 무서워하는 사람이면서 무서운 사람으로 변해가고 있는 것이 아닌지.
김유정과 이상은 동시대 사람으로 김유정이 두 살 위였다. 둘은 다 폐결핵으로 같은 해 앞서고 뒤서며 총총히 먼 나라로 떠났다. 김유정이 스물아홉, 이상은 스물일곱의 나이었다.
민족시인으로 잘 알려진 윤동주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사랑 받는 시인 중의 한 명이다. 그의 '서시'와 '별 헤는 밤'은 학창시절 누구든 한 번 쯤은 읊어보았으리라 짐작된다. 그는 스물일곱의 나이로 옥사하였다. 근래 중국은 그를 자기나라 사람이라 우긴다. 연변 출신의 조선족이니 자기들의 소수민족이란 주장이다. 참으로 어이없는 떼거지다.
'일출봉에 해 뜨거든 날 불러주오'로 시작하는 노래 '기다리는 마음'의 가사를 쓴 이는 김민부 시인이다. 그는 고등학생 때 이미 시집을 내었다. 시인과 방송작가로 기대를 모으며 한창 활동할 나이에 화재로 숨졌다. 그 때 나이 서른하나였다. 그의 시에 역시 장일남 씨가 곡을 붙인 노래가 하나 더 있다. '석류'라는 시다. '불타오르는 정열에/ 앵토라진 입술로/ 남몰래 숨겨온/ 말 못할 그리움아/ 이제야 가슴 뻐개고/ 나를 보라 하더라'
외국시인으로는 알아둘만한 사람이 두 명 있다.
이하(李賀)는 중국에서 자기만의 독창적인 시세계를 이룬 4대가 중의 한 사람으로 추앙받는다. 시성(詩聖)두보, 시선(詩仙)이백, 시불(詩佛)왕유 그리고 이하를 시귀(詩鬼)라 부른다. 그는 유혼(幽魂)의 세계를 많이 노래하였다. 요절을 예감했기 때문일까. 스물일곱에 죽었다.
로트레아몽은 프랑스귀족 출신으로 기이하고 불가사이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장편 산문시집 '말도로르의 노래'는 인간과 신에 대한 불신 그리고 저주로 가득 차 있다. 이 책은 보들레르와 랭보, 쉬르레알리즘 시인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겨우 스물넷 나이에 죽었다.
"천재란 필경 일정한 궤도에 따라 운행되는 유성이 아니라 우연히 지상에 나타났다가 홀연히 사라지는 유성과도 같은 존재다" 유명한 롬브로즈의 말이다.
수필가 홍영지 kua34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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